목소리 더욱 커질 청와대/정국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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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혁후퇴 보수회귀」 야선 공세강화/갈등 빚은 총리경질은 통치권 차원
이회창 국무총리의 전격 퇴진은 커다란 충격과 함께 정국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될 소지가 많아 새정부 개혁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로선 1년여만에 총리를 두차례나 바꾸게 된데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임명 4개월만에 교체하게 됨으로써 인사정책의 불안정성 노출과 함께 김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다소 손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책임제 아래에서 국정을 총괄하여야 할 입장인 대통령으로서 국정방향을 놓고 내각수반인 총리와 갈등이 있을 경우 통치권자로서는 당연히 이를 교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총리 기용시부터 이러한 사태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총리의 강직한 개성이 대통령,또는 내각의 국무위원과 부딪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본다면 대통령이 이 총리를 선택한 4개월전의 인사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새 총리를 맞은 행정부는 총리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강성 이미지에서 연성으로 면모를 달리하게 됐다.
이는 행정부 내부의 불협화음을 털어내고 일사불란한 체제로의 정비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김 대통령의 친정체제로 당연히 연결될 것이다.
이 총리의 사퇴로 빚어진 이러한 틈을 야권이 놓칠리 없다. 그동안 개혁기세에 밀려 위상정립조차 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던 민주당으로선 정국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공세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이미 민주당은 이번 인사를 「개혁후퇴·보수회귀」라고 규정하고 새총리 인준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방미중인 이기택대표도 급거 귀국할 정도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최근의 각종 현안들과 연계작전으로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23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상무대 국정조사 참고인으로 김영삼대통령을 정식으로 포함시키는 등 추상같은 공세 의도를 분명히하고 나섰다.
최근 심상찮아지는 재야운동권과 학원가·농촌의 움직임과 어우러질 경우 여권의 대응여하에 따라선 갈등 증폭으로 정국파고가 높아질 전망이다.
자칫 개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문민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발복잡혀 표류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대통령으로선 이같은 위기상황을 맞아 다각적인 국면전환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여 어떠한 카드가 구사될지 곧 이어질 후속인사폭 및 인선내용과 함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측근정치의 한계와 문제점이 누차 지적된 만큼 대폭적인 포용정치와 구 정권 인사기용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 측근들은 이번 인사를 「단순사건」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 문민정부의 정국운영 기조에 결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단언하고 있다.
이번 인사가 문책성으로서 이 전 총리의 정책수행과 관련한 불만표출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내각의 목소리보다는 청와대의 목소리가 국정에 더욱 강하게 반영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있어 앞으로 직언풍토와 내각의 소신있는 행동을 그만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아울러 민주당의 지적대로 정책기조가 보수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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