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엿보고 싶은 파괴적 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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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인간의 어떤 행동이 정상적인 것인가, 아니면 병적인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전문가들도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수집, 관찰하고 인터뷰를 통해 내면에 감춰진 성격을 분석해 보지 않고서는 가부를 판정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고층 아파트에 사는 한 성인 남성이 낮은 위치의 개인주택에 사는 젊은 부부의 정사 장면을 열린 창문을 통해 엿본다면, 그것이 호기심 유발로 빚어진 통상적 행동인가, 아니면 성도착에 해당하는 중대한 정신병인가 묻는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처럼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엿보는 행위를 규시(窺視)라고 하고, 그 행동을 안 하면 조바심이 날 정도로 고정된 상태를 ‘규시증’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규시증 환자의 고백을 들어보기로 하자.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부부행위를 하는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매일 밤 10시쯤이면 똑같은 장소에서 기쁨을 못 이겨 내뱉는 여인의 높은 옥타브 소리가 들리기에 근처 아파트 옥상에 올라 망원경으로 실내를 들여다봤어요. 처음에는 신기하던 이 섹스 장면이 차츰 나의 호기심을 극도로 팽창시켜 놓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쪽에서 엿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만의 프라이버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흥분이 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섹스가 일어날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이 청년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아직 총각으로 정기적인 성행위가 없음에도 타인의 성교를 엿보지 않으면 성욕이 일어나지 않는 특이한 성 생리였다. 그러므로 규시증이냐, 아니면 짓궂은 장난인가의 분수령은 자신의 성욕과의 관계 유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타인의 성기나 나체를 봄으로써 성욕을 만족시키려고 드는 것까지도 규시증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병증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병하는 것인가? 어린이의 성장 과정에 고추를 잡아당긴다든가, 어른들 앞에 노출하는 행동을 보이는 남근기라는 시기에 일어나는 성욕의 충족 방법 여하에 따라 규시증이 발병한다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그 실례가 원광경(原光景)이라고 불리는 소년기의 체험인데, 성교 중인 부모의 행동은 어린이에게 두렵고 기이하고 난해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주간의 다정스러운 부모 모습에 견주어 너무도 다른 험악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이따금 발하는 신음소리는 죽음을 초래, 자기를 고아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리를 생기게 만든다. 그것이 성애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 데서 생긴 오해다.

그 두려움이 심리적 상흔을 만들고 그것이 성욕을 느끼는 연령이 되었을 때, 자신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어른들의 성행위를 엿봄으로써 어린 시절의 피해에 대한 앙갚음을 하는 것이 즉 규시증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이해가 될까?

그런 까닭에 규시증 속에는 사디즘의 색채가 언제나 복합해서 들어있게 마련이다.

10여 년 전 유럽 사회에 유행했던 타인들의 섹스를 보면서 자기 커플도 섹스를 하는 ‘집단 섹스’에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한다는 사디즘의 요소가 들어있다고 해서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름 아닌 바로 그런 파괴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이 동호인들을 끌어 모은 핵심 포인트였다.

대형 거울을 통해 자신들의 섹스 장면을 흘깃 보면서 흥분의 진작을 도모하는 부부가 있다면 그것도 사디즘의 일종인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격언처럼 처음에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는 단순한 행위가 반복되는 동안 어떤 형태건 생동감 있는 섹스 장면을 보지 않고서는 성욕에 불이 붙지 않는 습관성이 생기면 그때부터 규시증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족을 달면, 정형화되어 무미건조해진 부부생활에 하나의 양념이나 향신료로서 이용하는 행위까지 성적 이상이나 성도착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일시적 장난의 범주 안에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코노미스트 9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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