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실종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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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빌 클린턴이 월남전 당시 징집을 기피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마치 아들이 전기소켓에 손가락을 집어넣지 않는다고 회초리를 드는 것과 같다.』
92년초 클린턴이 대통령선거전에 뛰어들자마자 월남전 당시의 징집기피 문제로 곤경에 빠졌을 때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시작되는 칼럼으로 클린턴을 두둔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경력을 가졌다는 그 칼럼니스트는 『그 전쟁은 처음부터 사악한 전쟁이었고,미친 전쟁이었다』고 단정하고 『당시의 참전거부는 부끄러워 해야할 일도,감춰야할 일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월남전에 대한 그의 이같은 견해는 상당수 미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특히 전사자 가족이나 미 국방부가 행방불명으로 처리한 2천2백26명의 가족들에게 월남전은 바로 악몽 그 자체일 것이다. 확인된 전사자의 가족들은 그래도 체념할 수나 있지만 실종자의 가족들은 한에 사무칠 것이 분명하다. 행방불명자의 대부분이 전사했으리라는 정부의 입장에 이들은 정면으로 맞서왔다. 그럴만한 근거는 있다.
73년 3월 「귀환작전」이라는 이름의 최종 포로교환이 이루어진후 당시 닉슨 대통령은 상당수의 미군이 생존해 있으리라는 일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일축했으며,재작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3명의 레이건 행정부 관리들은 『정부가 일부 생존포로들이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포로교환직후 인도차이나에 잔류된 미군포로 1백15명의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국방정보국의 증언은 역대 정권의 일관된 주장을 뒤엎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혹 아직도 생존한 한국군이 남아있지 않겠느냐는 문제는 종전 19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찜찜한 구석으로 남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거론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당사자들의 쑥덕공론에서 별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그리고 미국정부가 생존자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데 비해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포로·실종자는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왔다는 점이다.
월남전에서 한국군 9백여명이 실종됐으리라는 한 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 몇명이라도 북한이나 인도차이나에 생존해있는 한국군이 있다면 송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월남전의 마지막 한을 달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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