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검찰은 개혁밖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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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억원 시줏돈」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의 갈팡질팡은 옆에서보기에도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感에는 이골이 났다할 검찰이 어쩐 일인지 이번 일에선 눈치가 없었다.「조계종 폭력사태를 성역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검찰은 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것으로 해석해「80억원은 大佛공사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재수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총리의 지시에「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지적을 받고 하루만인 7일엔「 의혹해명 차원에서 보완수사를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치자금 의혹 수사 내용은 대통령의 지시를 총리가 부연한 것이긴 하나 아무튼 이 해프닝은 검찰로서는 또 하나의 떳떳지 못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난해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집단들중 정치권을 그 첫번째,「검찰」을 두번째로 꼽았다.그러나 첫째로 꼽힌 정치권은 지난 4일 정치개혁입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적어도 變身의 안간힘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고보면 이제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첫째가는 집단은 검찰이 된 셈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검찰은 국민의 눈에 달라진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사를 지휘한건 대통령이지 검찰총장이 아니었다.「대통령이 검찰총장」이란 말이 나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도탓인가.물론 제도적인 문제점도 없지 않다.검찰 수뇌부의 임명권이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라든지,신분을 확실히 보장해줄 인사원칙등의 제도가 없어 위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든지 하는 등등의 제도적 취약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검찰 스스로가 권위주의적 관행에 默從해버리는데 있다.
검사는 검사同一體의 원칙에 따라 上司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어있다.하지만 동시에 검사는 公益의 대표자이자 獨任관청의 자격을지니고 있다.
그런 독자적인 영역을 보장해 주기 위해 검찰청법은 법무장관의지휘.감독권을「일반적」인데 한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게 되어있다.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검찰의 정치적 독립 가능성이 없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검찰의 역사가 정치적 예속의 역사로 일관된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지난 49년의 任永信씨 사건은 자랑스런 검찰史로 기록돼 있다.당시 任씨는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공금을 횡령하고 李承晩대통령의 생일기념품 마련 명목으로 업체로부터 기부금을 거둔 혐의로 감찰위원회(위원장 鄭寅普)에 의해 파면결의됐다.李대통령은『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파면시킬 수 없다』는 성명을내 그를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지검 崔大敎검사장은 그에 아랑곳 없이 任씨를기소해 재판정에 세워 끝내 검찰의 자존심을 지켰다.
전후 록히드사건 수사,리크루트사건수사 등으로 내각을 일곱번이나 무너뜨린 日本의 東京地檢특수부의 권위도 法과 제도로만 확립된 것은 아니다.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검사들이 결연히 자리를 걸고 지켜낸데서 얻어진 것이다.
법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지난 88년 검찰총장의 임기제를 도입했다.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무너진 것은 文民정부가 들어선 뒤였다.金斗喜총장이 법무장관으로 발령나면서 만3개월만에 물러났고 그 뒤를 이은 朴鍾 喆총장은 재산공개파동으로 「임기중 퇴임하는 마지막 총장이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6개월만에 물러갔다.그 사정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아니나 어떻든 임기제 정신에는 反하는 것이었다.그래도 검찰은 침묵했다.
***政治중립은 지켜야 검찰은 公權力의 상징이다.그 상징이 국민으로부터 不信을 당해서는 사회정의도,사회안정도 기대할 수 없다.또 그래서는 문민정부의 기반이라 할 도덕성마저 흔들린다.
언제까지 검찰은 改革의 死角지대에서 머물 것인가.정부는 그것을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검찰은 과감히 改革에 나서고 정부는 그 걸음마를 솔선해서 부축해주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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