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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금융의 필수조건 신용평가/어음·회사채 발행때 복수평가 의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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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85년 도입불구 “유명무실”… 전면개편/투자자에 결과 공개 의무도/시장개방 앞두고 변신 필연
신용평가제도란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금융기관·기업·투자자들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개방시대에 우리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서나,또는 신용사회의 정착을 위해서나 가장 중요한 「밑바닥 얼개」가 바로 신용평가제도다. 정부가 더 이상 놓아두거나 미루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신용평가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신용평가제도에 대한 특집을 꾸며본다. 금융의 선진화는 이런데서부터 하나 하나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지난 85년부터 도입됐으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는 신용평가제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종합방안을 18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복수평가제가 도입되며 ▲증권관리위원회가 신용평가기관의 등록 및 업무취소·정지 등의 권한을 행사하며 ▲평가 결과가 공개되는 한편 ▲평가수수료는 자율화된다.
재무부의 이같은 방침은 현재의 신용평가제도로는 금융자율화·개방화를 추진하기가 어려울뿐 아니라 「평가 시장」 자체가 개방(94∼95년에 1단계로 외국기관의 국내 사무소 설치)을 앞두고 있어 국내신용평가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위기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해외증권이나 담보없는 어음,보증없는 어음,보증없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1개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만 평가를 받으면 됐었으나 앞으로는 2개 기관으로부터 동시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
◎현행제도의 구조적 문제/정보력 취약·자립도 낮아/담보선호등 관행도 “발목”
『우리보다 정보가 어두운 신용평가기관의 분석을 어떻게 믿고 기업에 돈을 내주겠는가.』 은행·투금사 등 금융기관의 기업체 심사담당자들이 신용평가기관에 대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국내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금융기관의 불신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구조적」인 것이다.
1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감안하더라도 신용평가제도가 자리잡기에는 현재의 금융관행 등 경제·사회·문화적인 「관행」과 신용평가 「제도」와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보 공개·유통 수집·분석의 폐쇄성=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한국기업평가 등 3개 신용평가기관이 활동하고 있으나 우선 이들이 전문기관 치고는 정보수집 능력에서 상당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들은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기관에 요구자료를 꼬박꼬박 대주며 기는 시늉을 하다가도 신용평가기관에 대해서는 자료협조를 한사코 거절한다고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이 때문에 평가기관이 활용하는 자료란 기껏 결산보고서나 증시 공시,신문스크랩 등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평가기관·기업과의 「먹이 사슬」=금융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신용평가를 받을 기업 수자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3사의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정작 엄하게 평가를 받아야 할 기업이 영세성과 적자의 수렁에서 헤매는 이들 평가 기관에 대해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빌미로 오히려 「상전」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회계 「인프라」 부재=특히 분식결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등 「회계 인프라」가 열악한 우리 실정에서 결산서로 기업의 신용을 분석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다.
▲전문 인력부족=뿐만 아니라 일의 성격상 12월 결산법인의 결산서가 쏟아지는 3∼5월중에 수백건의 평가작업이 몰리는데 한 평가회사당 30여명 남짓한 평가인력으로는 올바른 평가를 하기에 너무 벅차다.
▲신용평가에 대한 불신=이처럼 기업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다보니 처음부터 실제보다 후한 등급을 주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고 기업의 경영 내용이 나빠지더라도 「타사에 손님을 뺏길까봐」 등급을 낮춰 조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신용평가회사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
정보부족 상태에서 1년에 한번씩 등급조정을 하는데 안주하다보니 기업의 상황변화를 제때 포착못해 A,B등급을 받은 기업이 부도에 몰리는데도 평가기관은 이를 모르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담보대출 관행=평가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더 큰 이유는 금융계가 만성적인 자금초과수요 상황에 길들여져 대출때 신용보다는 담보를 챙기는 관행을 유지해온데 있다. 담보를 맡길 기업이 줄을 서 있는데 굳이 믿기 어려운 신용등급을 보고 돈 떼일 위험을 감수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 신용평가제도의 문제점은 「신용을 중시하지 않는 경제·사회적 풍토」라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접근,단게적인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이재훈기자>
◎「신용평가제」란…/「기업 신뢰도」 재는 잣대/국제기준따라 등급 매겨/“사채평가가 진짜” 속설도
신용평가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이 망할지,안 망할지 또는 꾼 돈을 갚을 수 있을지,없을지 그 가능성을 등급으로 매겨 기업에 돈을 대줄 투자자나 금융기관이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업이 ▲담보없는 어음(기업어음·중개어음 등) ▲보증없는 회사채 ▲해외전환사채(CB) 등의 해외증권을 발행하려면 한국신용정보 등 3개 신용평가기관중 한곳의 신용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 그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다만 연간 평균 50억원 미만의 기업어음을 할인받거나 연간 매출액 1백억원 미만의 무담보어음을 매출하는 경우,그리고 금융기관 등의 보증을 받아 회사채를 발행하는 경우는 신용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들 평가기관은 기업의 각종 회계자료를 분석,등급을 매기는데 국제기준에 따라 회사채는 AAA에서 D까지 10등급,CP는 A 1에서 D까지 6등급이 통용된다.
대개 B등급까지는 돈 갚을 능력을 인정받지만 C등급 이하로 가면 신용에 의심이 가는 수준이어서 어음이나 회사채 발행이 어렵다.
지난해 3사의 신용평가 실적을 보면 CP의 경우 모두 1천36건중 A가 54.2%,B가 36.1%였으며 회사채는 3백19건중 A가 97.7%나 돼 등급이 후한 인상을 주고 있다.
반면 투금사나 사채시장에서 말하는 A급,B급은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등급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매긴 것이며 기준이 상당히 짜 아주 건실한 대기업이라야 A급으로 대우받는다.
국내에서 가장 확실한 신용평가는 사채시장의 평가라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이재훈기자>
◎개편… 미룰수 없었던 이유/담보대출관행 더이상 방치 곤란/장기적으로는 기업도 부담 덜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현행 신용평가제를 더 이상 놓아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첫째,담보대출 관행을 계속 끌고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용대출을 정착시키기에는 현행 신용평가제도가 너무 낙후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셋째는 신용평가시장이 94∼95년중 1단계(국내사무소 설치 및 10%이내 합작 지분참여),96∼97년중 2단계(외국평가기관의 지분참여 확대) 등 개방을 앞두고 있어 선진국의 유명평가기관과 맞서려면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이번 대책은 ▲평가기관들을 경쟁시키고 ▲평가결과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며 ▲엉터리 평가를 제재키로 하는 등 함량이 매우 높다.
문제는 이같은 제도개선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여부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평가기관들의 실질적인 「평가능력」 향상이 이제부터의 가장 시급한 과제며,나아가 경제제도만이 아니라 신용사회로 가기위한 사회·문화·의식의 전환이 매우 중요한 선결과제다. 한편 수수료율이 자유화된데다 복수평가제가 도입돼 기업들의 수수료 부담은 다소 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바로 이점 때문에 제도개선을 망설여왔었는데 평가기관간 경쟁으로 실제 부담은 그리 크게는 늘지않을 것이며 신용만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해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민병관기자>
◎어떻게 달라지나/평가기관에 주는 수수료 자율화/「CMA」는 B급이상등 제한명시
◇복수평가제 도입
▲미국·일본처럼 2개 신용평가기관이 한 기업을 동시에 평가.
▲금융기관들이 사거나 중개할 수 있는 무보증 회사채의 자격은 「A급 이상」에서 「BBB급 이상」으로 낮추되 무담보어음은 「C급 이상」에서 「B급 이상」으로 높임(복수평가증 낮은 평가를 기준으로 함).
▲기업들이 평가기관에 주는 수수료 한도(기업어음은 업체당 연간 6백만원,무보증 회사채는 건당 3천만원)를 없애고 자율.
▲다만 중소기업의 수수료 부담 증가를 덜기 위해 어음할인 규모가 50억원미만(평잔기준)이거나 연간매출액이 1백억원 미만인 기업이 발행하는 기업어음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앞으로도 당분간(94∼96년중 단행될 담보매출어음의 금리자유화 때까지) 더 신용평가를 면제.
◇평가결과 활용확대
▲어음·회사채를 사거나 중개하는 금융기관들에 평가등급을 고려해 금리를 차등화하도록 유도.
▲기관투자가들이 실적배당상품에 편입시키려 사들이는 어음·회사채는 앞으로 일정 등급 이상인 것만 사도록 의무화. 예컨대 보험회사가 인수하는 사모사채는 복수 신용평가에서 A급 이상을 맞아야만 하고 투금사의 어음관리계좌(CMA)와 증권투자신탁·은행 불특정금전신탁에 편입되는 기업어음은 각각 B급 이상으로 제한됨.
◇평가결과 공시
▲기업어음은 신용평가결과를 거래통장 또는 어음 실물의 여백에 의무적으로 표시케 하고 무보증 회사채는 월간지인 「주식」(증권거래소 발행),「증권」(증권업협회),「상장」(상장사협의회)지에 평가등급 일람표를 싣도록 함.
◇평가기관 감독강화
▲지금까지는 평가기관을 투금협회나 회사채 인수협의회 등이 지정만 하면 됐었으나 등록제를 새로 도입하고 이를 증권관리위원회가 일괄 관리·감독케 함.
▲증관위는 앞으로 등록요건을 마련,기존 3개 평가기관외에도 이 기준에 맞으면 추가 등록을 받는 한편 평가결과가 엉터리로 나왔을 때는 등록을 취소·정지시킬 수 있도록 함.<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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