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흥행 감독’ 김상진은 국내 코미디의 간판스타다.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선생 김봉두’의 장규성 감독과 함께 코미디계의 큰 흐름이 돼왔다. 욕설과 폭력, 화장실 유머가 버무려진 조폭 코미디를 뛰어넘는 대안이었다.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은 김 감독이 ‘귀신이 산다’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역시 추석을 겨냥했다.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감독의 재능은 여전하다. 가난 때문에 범죄를 모의한 세 남자(강성진·유해진·유건)가 국밥집으로 자수성가한 권순분(나문희) 여사를 납치한다. 권순분의 자식들이 어머니의 구출에 관심이 없자, 권순분은 스스로 납치범의 리더가 돼 500억원의 몸값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황당 납치극이다.
납치범들은 어수룩하거나 겁이 많고, 배포 큰 인질에게 쩔쩔매다 졸개가 된다. 인질이 납치를 지휘한다는 설정도 코믹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문희, 코믹 조연으로 일가견 있는 유해진·강성진 등이 합류했다. 헌신적이거나 주책스러운 어머니 역을 해온 나문희는 데뷔 40여 년 만에 첫 주연이다. 안 그래도 여유 있는 몸집의 박준면은 ‘반지의 제왕’ ‘앨프’에서처럼 컴퓨터 그래픽으로 몸 사이즈를 더욱 늘려 초대형 거인 아가씨를 연기한다.
후반부 하이라이트, 현찰 500억원을 실은 기차에서 현금을 빼오기 위해 ‘어리버리’ 3인방이 고군분투하는 대목도 얼마나 코미디에 봉사하는지는 미지수다.
물론 모든 코미디가 포복절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배우의 이미지 비틀기, 캐릭터의 자기모순과 역설로 배꼽 잡게 했던 김상진의 장기가 사라진 대신 못된 자식 혼내주기 같은 교훈적 메시지와 기차 장면의 스펙터클이 두드러지니, 김상진 코미디로서 그렇게 성공적 변신은 아닌 듯하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양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