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가 엘리트 중·일 이공대생 부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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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대 공대 3학년 심수영(지구환경시스템.21.여)씨는 올 1학기를 중국 칭화대에서 보냈다. 공대에서 실시하는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GLP.Global Leadership Program) 참가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친구 청린(항공우주학과)의 기숙사에 들렀다. 벽에는 2003년 중국 첫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를 타고 귀환한 '우주 영웅' 양리웨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청린은 "나도 저 사람처럼 인민의 영웅이 되겠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중국 각 성(省)의 내로라하는 천재로 커 온 칭화대 학생의 엘리트 의식이 묻어났다. 역시 칭화대에서 GLP를 마친 여인한(27.산업공학)씨는 "학교가 학생들 건강을 위해 오후 11시면 강제 소등을 할 정도로 그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4일 서울대 공대 소회의실에 심씨와 여씨처럼 1학기 GLP를 경험한 7명과 2학기 예정자 4명이 모여 경험을 나눴다. 그들은 "서울대 공대생들에게는 졸업 후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칭화대.도쿄대 이공대생에게선 그런 위기의식을 찾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눈 안 팔고 좋아하는 거 한다"=도쿄대를 경험한 신지훈(24.기계항공)씨는 "서울대 이공계에서는 다른 전공을 기웃거리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쿄대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수학을 하면서 원하는 반도체 회사에 어려움 없이 들어가는 도쿄대 수학과 친구가 부러웠다"고 덧붙였다.

칭화대에서 공부한 안지환(25.기계항공)씨는 "칭화대의 교훈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덕을 쌓아 세상을 이끌어간다)'이 말해주듯, 그곳에는 미래 중국 엔지니어들의 자부심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고급 두뇌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꺼리는 분위기에 대해 여인한씨는 "연구 조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라며 "나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국에 남고 싶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라이벌들을 보며 자극 받아라"=서울대 공대는 '치열한 과학 경쟁에서 마주칠 라이벌을 미리 경험해 보라'는 취지에서 GLP를 도입했다. 일찌감치 글로벌 마인드를 길러주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김도연 공대 학장은 "20~30년 후에는 한.중.일 등 동북아 3국이 세계 과학기술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며 "그곳에서 자극을 받고 네트워크도 다지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명문대를 한 학기 동안 체험하는 GLP는 학생 1인당 700만원 정도의 경비를 공대 동창회에서 모두 부담해 준다. 1학기에는 10명을 선발, 칭화대와 도쿄대에 5명씩 보냈다. 2학기에는 20명을 선발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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