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물갈이 한나라 '공천혁명' 4·15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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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을 추구하면 낡음은 배제되게 마련이므로 영입에 못지않게 배제의 논리도 개발돼야 한다. 부패와 부정비리에 연루된 정치인,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지탄받는 정치인은 이제 떠나야 한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15명이 공동 발표한 선언문 중 일부다. 공천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열씨가 초안을 썼다.

'배제의 논리'라는 용어에 담겨 있듯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의 현역 의원 물갈이 의지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위원들 중 외부 인사들은 심사위 참여 이유로 "환골탈태를 위해"(이문열), "보수정당의 변화 필요성 때문에"(강혜련 이화여대 교수),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춘호)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영남권 등 텃밭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방침은 이런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고 한다.

한 공천심사위원은 "그동안 부산.경남과 대구.경북 등에선 인물보다는 당을 보고 찍어준 게 사실 아니냐"면서 "그러다 보니 현역 의원의 전문성.자질 부족 등에 염증을 느끼는 여론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한나라당 부설기관인 여의도연구소 등이 설 전에 실시한 전국 지구당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같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대구.부산지역 28개 선거구의 대부분에선 현역 의원을 찍지 않겠다는 응답이 다른 지역 평균의 두배를 넘었다고 공천심사위원들은 귀띔했다.

당 자체 조사 결과 영남권과 서울 강남 등 한나라당 절대 강세 지역은 2백27개 선거구 중 8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이 중 당 공천심사위는 40~50곳을 교체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이 1백26명인 만큼 30~40%에 해당한다. 대신 이곳에는 신인들을 대거 발탁하기로 했다. 한 당직자는 "당 강세 지역인 만큼 이들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17대 총선 후 한나라당의 중심 세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거물급 유명인사의 영입보다 물갈이 쪽으로 승부수를 띄운 데는 현실적인 한계도 고려됐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YS(김영삼)정부를 마지막으로 야당 신세로 전락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전.현직 장.차관 등에 대한 영입 경쟁을 벌이는 것은 역부족"이라며 "거물 영입이 부진하다는 비판은 이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공천심사위원들이 영입 경쟁보다 물갈이로 차별화에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감안했다고 한다.

공천심사위의 결정에 최병렬 대표가 관여했는지에 대해 위원들은 "당 대표와는 상의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위원은 "이심전심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공천심사위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한나라당은 적잖은 진통에 휩싸일 것 같다. 교체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현역 의원들의 반발은 거셀 전망이다. 반발의 강도에 따라 당 분열이 가시화하는 등 총선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공천심사위원은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과 자료를 근거로 할 것"이라며 "그러나 후유증은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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