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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정치인과 다른 이명박의 '튀는' 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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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보통 정치인의 언어는 공식적이다. 의전적으로 미리 준비되거나 이해관계를 고려해 치밀하게 계산적이다. 어떨 때는 메시지가 선명하지만 다른 경우엔 의도적으로 모호하다. 그런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언어는 좀 다르다. 오랫동안 비즈니스 세계에 있었고, 정치권이 아닌 서울시장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의 말은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고, 퉁명스럽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생각을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주어.술어 개념 없이 어절만 연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① 끝났는가 싶은데 다시 이어지는 말=이 후보는 만연체 어법이 특징이다.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여전하다. 끝났는가 싶으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다시 시작하곤 한다. 체험이 워낙 많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라는 게 참모들의 해석이다.

지난달 29일 사무처 요원들과의 오찬 때도 그랬다. 그는 식사에 앞서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모든 직원을 한자리에 뵙게 되어 기쁘다"고 말문을 연 그는 "마음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말을 맺는 듯 보였다. 이미 200자 원고지 5쪽 분량을 말한 터였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악조건이 있지만 딱 두 가지를 믿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결국 그의 인사말은 원고지 20장 분량이었다.

과거 명대변인이었던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은 "20분이고 1시간이고 말하면 당할 사람이 없는데 1분 내로 얘기하는 건 박희태보다 약한 것 같다"고 평했다.

② 주어-술어 종종 생략=말이 길어지다 보니 주어-술어를 찾기 어려운 때도 있다. 특히 즉석 연설에서 그렇다.

지난달 31일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서 이 후보가 한 말이 좋은 사례다.

"(의원들이)구호를 말하는 걸 보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가 대다수 염원하는 정권 교체를 달성하는 결의를 다지는 좋은 행사다."

아마 "구호가 방방곡곡에 퍼져 나가 정권 교체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과 "오늘 행사가 정권 교체를 결의하는 좋은 행사가 됐다"는 말을 한꺼번에 한 말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특징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YS의 대변인 격인 박종웅 전 의원도 "말하는 데 기지가 부족한 점은 두 사람이 비슷하다"며 "YS는 촌철살인의 말을 잘한 데 반해 이 후보는 경험을 잘 인용하더라"고 말했다.

③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이 후보는 직설적인 어법을 구사한다. "한나라당 이미지가 무조건 보수.꼴통일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24일 당무회의)는 식이다.

이런 어법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변함없었다.

DJ에게 대놓고 두 차례나 "대선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DJ가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영남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을 뽑았다"고 하자 "각하 때문에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응수했다.

④ 격식 파괴, 실용 중시=이 후보는 지난달 31일 지리산 하산길에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한 가족을 만났다. 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는 걸 보곤 "과자를 하나 줘야 사진 찍어줄 거야"라고 해 주변을 웃겼다. 이 후보는 '과자 답례'로 아이를 번쩍 안고 사진을 찍었다.

이 후보는 실용적인 표현도 즐긴다. 지리산 등반 뒤 그는 방명록에 '우리 천연 자산인 지리산을 사랑하고 보호합시다'라고 썼다.

임태희 후보비서실장은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식을 안 따진다"며 "이 후보는 '내 철학은 실용'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소개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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