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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출 북한 IT 두뇌 300~400명 한국·동포 기업서 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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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6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개발구에 있는 남북 IT 협력 전문기업인 하나프로그램센터에서 북측 IT 기술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단둥=연합뉴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를 졸업한 북한의 우수한 기술 두뇌들이 중국 내 한국 기업과 동포 투자 기업에서 달러를 벌면서 시장경제와 현장 경험을 배워 온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특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중국의 발전상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찬탄한 뒤 해외의 앞선 정보기술(IT)을 빠르게 따라 잡자고 독려하면서 기술 인력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징(北京)에서 활동하는 대북 사업가 A씨는 "북한에서 선발된 출중한 IT 인력들이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나 동포가 설립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며 "드러내지 않고 북한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최소 300~400명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북에선 '중국에 나가면 달러도 벌고 컴퓨터 기술과 경험도 익힐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배경(백)을 동원해서라도 이들 기업에 취업하려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베이징의 IT 중심인 중관춘(中關村), 한국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을 비롯해 다롄(大連) 등 중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고 A씨는 전했다. 이들이 일하는 분야도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애니메이션 제작, 인터넷 쇼핑몰 관리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따르면 재미동포 P씨가 올 초 베이징에 설립한 IT 기업에 북한 기술자 20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대졸 사원 초봉에 맞먹는 월 1500위안(약 18만원)을 받고 있다.

홍콩에서 기업 활동을 해 온 동포 C씨가 다롄에 500만 달러를 투자한 소프트웨어 기업에는 현재 70여 명의 북한 인력이 일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원화를 제작하는 이 업체는 앞으로 북한 기술자를 2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기업 사정에 밝은 B씨는 "북한에서 온 직원은 김일성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인력들로서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수주받은 애니메이션 제작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동포 K씨가 베이징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도 컴퓨터를 전공한 북한 엔지니어 20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왕징 지역의 아파트에 있는 사무실에서 컴퓨터 수십 대를 설치해 놓고 북한에서 생산된 고급 약재와 술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 업체 주변 인사는 "인터넷을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라며 "이들로부터 제품을 주문하는 고객의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LG 관계자도 "LG CNS가 2005년 6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미국 동포가 설립한 N사와 외주 계약을 하고 50명의 북한 IT 인력을 활용해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했다"고 확인했다. 중소 업체뿐 아니라 대기업이 북한의 IT 인력을 비즈니스에 직접 활용한 것은 유례가 없다.

이 관계자는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를 나온 이들 이공계 인력에게 1인당 월 1000달러가 지급됐다"며 "중국 직원을 고용할 경우엔 복리후생비 등 부대비용이 많이 들지만 북한 인력은 실력도 우수한 데다 아주 성실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단합대회 때 치어리더 부르자

"퇴폐적 방식 … 우린 안 보갔어"

함께 일해본 LG 경험담

"주체사상만 학습하면 됐지, 우리가 LG의 인화(人和)정신을 왜 배워야 하나."

"여자애들을 발가벗기고 춤추게 하는 것은 퇴폐적인 자본주의 방식이야. 우린 차라리 안 보갔어."

컴퓨터 솔루션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LG그룹의 자회사 LG CNS가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북한의 정보기술(IT) 인력들이 LG 측에 내뱉은 말들이다.

북한 이공계 인력 50명은 2005년 6월부터 베이징(北京)에서 LG CNS와 사실상의 고용계약을 맺고 함께 일했다. LG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사고 방식이 달라 서로 작은 일에서 충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LG그룹의 규정에 따라 회사 기본 정신인 인화를 교육하려다 반발을 샀던 경우다. 몇몇 기술자는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 회사 정신 따라 배우기를 거부했다는 설명이다.

회사가 단합대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행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늘씬한 몸매의 치어리더를 초청해 춤추게 했는데 북한 기술자들이 발끈했다는 것. 이들은 "우리는 쳐다보지 않겠다"며 등을 보이고 돌아앉아 LG 관계자들이 한동안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들도 시장경제 마인드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기업이 이윤 추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LG 관계자는 "북한의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한국 기업이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좋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 기술자를 중국에서 고용하려면 취업비자 문제가 여전히 가장 큰 장벽"이라고 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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