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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할 수 있다] 1. 100명 당선무효 되더라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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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과거 유권자 매수가 성행했던 영국은 지금 세계적인 선거 모범국이다. 선거 때 후보들은 1인당 1천3백만원 안팎의 법정비용만 쓴다. 무엇이 영국 정치를 바꿨을까. 바로 강력한 처벌이다.

영국은 1883년 '부패 및 위법행위 방지법'을 제정해 부패 후보는 영원히 출마할 수 없도록 했다. 법정비용을 초과하거나 사무장이 위반해도 당선 무효가 됐다. 수많은 후보와 의원을 퇴출시킨 이 조항은 현행 '국민투표법'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 선거법에 담긴 내용도 영국 못지않게 강력하다. 그러나 실제 선거판은 엉망이다. 17대 총선을 앞둔 이 시간에도 전국 유명 관광지엔 금배지 지망생이 빌린 관광버스들이 유권자를 가득 태우고 들락거린다. 무려 1천명을 24대의 버스에 태워 바닷가에서 회를 대접해 한끼에 1천6백만원을 쓰고 걸려든 사람도 있다. 공짜 사우나에 공짜 불갈비가 넘쳐난다.

각 당이 당내 경선으로 공천자를 결정하는 곳은 브로커에게 50만원.1백만원짜리 봉투가 뿌려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어쩌다 우리의 정치 개혁 시계는 거꾸로 도는가. 누구도 법을 겁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거사범 천국이다. 물론 억세게 운 나쁜 정치인이 의원직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김윤식 전 의원의 경우를 보자. 그는 16대 총선에서의 불법으로 17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03년 12월 대법원 확정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그가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은 3년7개월이다. 과연 이것도 처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치인들은 불사조다. 위법 판결도 허사다. 집권자들은 사면권이란 신통술로 이들의 피선거권을 회복시켜 준다. 어느 당 할 것 없이 선거법 위반 경력자들이 핵심 당직을 차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민주당 청년위원장 등등. 이 판국에 누가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선거법을 어기면 영원히 정치판에서 쫓겨난다"는 사회적 합의가 뿌리내려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호한 처벌이다. 국민은 "의원 1백명이 당선 무효가 돼도 좋다"고 각오하자. 어디 1백명뿐이겠는가. 황낙주 전 국회의장도 국회 본회의 발언에서 "우리 가운데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당선된 사람이 누구냐"고 말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당장 선언해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과 복권은 임기 중에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아야 한다. 여론은 법원에 대해서도 선거사범을 신속히 재판해 엄단하라고 요구한다. 불법으로 얻은 기득권을 절대 오래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법원의 의지를 담은 대법원장의 담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관위는 이번 4.15총선에 존폐를 걸어야 한다. 선거 초반에 돈 쓰는 후보들을 적발해 가차없이 후보 자격을 박탈하거나, 낙선되도록 해야 한다. 유권자도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뽑으려면 접대받을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입으로 개혁을 외치고, 손으론 돈을 주고받는 썩은 정치 풍토를 대물림해선 안 된다. 그래서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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