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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으려 등대에 오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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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문화 연구자 주강현씨가 이끄는 ‘아주 특별한 등대여행’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국의 해양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알자는 첫걸음이다. 재단법인 해양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도서출판 생각의나무가 후원한 ‘등대여행’의 통영·거제·소매물도 답사에 함께 했다.

등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등대는 바다와 마주한다. 빨간색, 혹은 흰색으로 치장했다. 푸른 하늘과 바닷물에 대비되는 강렬한 색감이다.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 속에서 한 점 방점이 된다. 밤이 되면 이 방점은 한 줄기 빛이 된다. 그 빛은 거친 파도 속에서 항구를 찾는 선원들에게 희망이 된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도 등대는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세파 속에서 꺾인 인간이 등대와 마주하면 부끄럽다.

영국 민요에 고은의 시를 붙여 만든 노래 ‘등대지기’가 널리 불리면서 이런 느낌은 더욱 커졌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위치한 곳이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고 등대지기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등대는 낭만적으로 미화된다. 하지만 등대를 지키는 사람 즉 ‘항로표지원’(이 말이 정식 명칭이다)에게는 고단한 삶의 현장일 뿐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면서 해안 등대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섬 등대들도 관광명소가 된다.
 
항구 풍경을 일신하는 등대들

이런 생각을 지닌 남녀 39명이 지난달 24일 서울을 떠났다. 경남 통영에 있는 연필등대와 소매물도 등대를 1박2일에 걸쳐 찾기로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4시간50분 만에 통영시 ‘도남항 동방파제 조형등대’에 도착했다. 이 등대는 모양이 연필과 비슷해 흔히 ‘연필등대’라고 불린다. 페인트 칠을 한 일반 등대와 달리 이 등대는 유리판으로 표면을 마감했다. 높이가 20m인 이 등대는 마산지방해양수산청이 ‘희망의 빛 조형등대 설치 계획’에 의해 현상 설계 공모를 통해 2006년 지었다. 수직 으로 세워진 모든 삼각기둥은 제각각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기둥 정상의 사면도 모두 다른 각도다. 따라서 보게 되는 시간대에 따라 등대는 조금씩 다른 형상이 된다. 이처럼 조형미를 강조한 등대가 전국 각지에 지어져 항구 풍경을 일신하고 있다.

소매물도 가는 배편은 통영과 거제 두 곳에서 출발한다. 거제 저구항에서 출발하면 약 30여 분 정도 걸린다. 운임도 어른 9000원으로 통영 출발보다 적게 든다. 통영에서 출발하면 시간은 더 걸리나 한산도·비진도 등을 거치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1.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은 기암절벽과 푸른 남해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통영8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2.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썰물 때만 건널 수 있는 몽돌길. 밀물 때 어른 목 정도로 잠기지만 조류가 빨라 그냥 건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3. 통영 도남항의 ‘연필등대’. 특이한 모양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무인등대다. 4. 폐교가 된 매물도 초등학교 소매물도 분교.

저구항 출항 시각은 아침 8시. 소매물도에서 등대가 있는 등대섬까지 가려면 물때를 맞춰야 한다. 썰물 때면 약 70m 길이의 몽돌길이 생겨 걸어갈 수 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가 소매물도의 정식 주소다. 통영항에서 남동쪽으로 26㎞ 해상에 있다. 매물도와 이웃하고 있으며, 북서쪽에 가익도, 남동쪽에 등가도가 있다. 평지가 드물고 해안 곳곳에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했다. 따라서 모래가 있는 일반적인 해수욕장은 없다. 해수욕은 선착장과 등대섬 가는 길 옆 바다에서 살짝 즐길 수 있다. 섬 면적은 0.51㎢, 해안선 길이 3.8㎞, 최고점은 157.2m. 15가구 34명이 살고 있다. 섬에는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하는 곳은 있지만 제대로 된 식당은 없다. 따라서 간식 같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섬 특성상 물이 귀하기 때문에 식수도 준비하는 편이 좋다.
처서가 지났음에도 날씨는 무척 무더웠다. 소매물도 선착장을 나서면 바로 오르막길이다. 집들이 바다를 향해 언덕 위에 늘어서 있다. 집들 사이로 언덕을 오르면 폐교된 매물도 초등학교 소매물도 분교가 나타난다. 아마도 섬 내에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땅 중 가장 넓은 평지인 듯싶다. 그래봤자 대형 아파트 한 채 크기 정도인 운동장이다. 1961년 4월 29일 개교해 졸업생 131명을 배출한 뒤 96년 3월 1일 폐교됐다고 적힌 교적비가 굳게 닫힌 교문 앞에 동그마니 놓여 있다.

땀을 닦아내며 쉬엄쉬엄 20분 정도를 걸으니 정상인 망태봉에 도착한다. 이곳에 올라서자 등대섬과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여기부터 등대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나무가 없는 초원길이라 햇살은 뜨겁지만 탁 트인 경관이 상쾌하다. 녹색 초원 사이로 가르마를 탄 듯 오솔길이 길게 나있다. 간간이 조심스러운 구간이 있다. 특히 해안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길목은 급경사여서 조심해야 한다. 현재 계단공사를 하고 있지만 공사 현장이라 더욱 조심스럽다. 또한, 해안 절벽 가까이 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등대섬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이 외지인들이 소유한 사유지이기에 안전시설을 설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섬의 이름까지 바꾼 등대

막상 등대섬에 오르면 나무계단으로 단장돼 있어 등대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등대와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등대섬으로 부르자 2002년 국립지리원 고시 제2002-215호에 의거 공식 명칭을 해금도에서 ‘등대도’로 확정했다.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3000~4000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상당수가 먹을 물을 찾아 등대 사무실로 오지만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 4명도 식수는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고 관광객 일부에게 물을 주기 시작하면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충분한 식수를 가지고 와야 한다. 또한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문제다. 이곳은 워낙 작은 섬이기에 쓰레기 처리를 할 수 없다. 다시 가지고 나가 육지에서 버리면 되는데 이를 섬에 버리니 섬이 망가지고 있다고 등대장 최중기(58)씨는 말한다.

소매물도 등대는 일제시대인 1917년 8월 5일 처음 점등했다. 이 등대는 1986년 철거된 뒤 신축하게 된다. 이곳 등대의 빛은 13초마다 비추며 약 46㎞까지 도달한다. 안개가 있을 때 사용하는 무적은 50초에 한 번씩 5초간 울리며 약 11㎞까지 들린다. 최낙정 해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행사가 진취적인 해양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행사 해설자로 나선 민속학자 주강현 박사는 “식민지 시절 세워지기 시작한 등대이지만 한국이 21세기 동북아 강국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해양을 이해해야 하고 그 첫걸음이 등대여행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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