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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줬다면 피랍자에 구상권 행사 가능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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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04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던 인질들이 석방되면서 정부가 이들을 위해 쓴 비용을 받아낼 수 있는지, 즉 구상권(求償權) 행사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일단 “피랍자와 관련 단체에게서 귀국 항공료와 희생자 운구비용 등을 받겠다”고 밝혔다. 어차피 피랍자가 썼어야 할 돈이란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다. 일본도 2004년 4월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억류됐다 풀려난 자국민 3명에 대해 귀국 경비 명목으로 237만 엔(약 1900만원)을 청구했다.

“불 껐다고 소방비용 받나” 불가론 우세

문제는 아프간 대책본부에 파견한 공무원의 출장비용을 받아낼 수 있느냐다. 법률가 7명에게 물어본 결과 ‘받을 수 없다’와 ‘받을 수 있다’가 4대3으로 상당히 팽팽하게 나뉘었다. 강동욱 변호사(태평양)는 아프간이 ‘여행제한 지역’이었다는 데 초점을 맞춰 ‘청구 가능’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해당 지역으로의 여행을 삼가라는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측면이 강해서 과연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의무 없이 도와준 것으로 보면 민법상 ‘사무관리’ 규정에 따라 비용을 상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오창 변호사(김&장)는 “당사자의 책임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국가의 국민보호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정부 직무의 연장선에 있는 출장비용까지 피랍자가 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임정수 변호사(한승) 역시 “행정지도에 불과한 ‘여행제한 지역’ 지정을 이유로 국민보호 의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몸값 지급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피랍자에게서 몸값을 받을 수 없다’가 ‘받을 수 있다’를 5대2로 앞섰다.

이준형 중앙대 교수는 “소방차가 불을 껐다고 해서 불 끈 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없다”며 ‘인질 구출은 국가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성재호 성균관대 교수도 “여러 선택 중에서 정부가 판단해 고른 것이기 때문에 피랍자에게 달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제시했다.

반면 법원의 한 판사는 익명을 전제로 “누가 보더라도 몸값을 주지 않고는 풀려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몸값 지급에 대해 인질과 그 가족의 묵시적·추정적 승낙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유괴된 아이를 위해 대신 몸값을 줬다면 당연히 그 부모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에게 희생된 심성민씨 가족의 주장처럼 샘물교회나 국가에게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김관기 변호사는 “교회가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현지에 보냈을 때에는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가 배상 부분에 대해선 “벼락을 맞았다고 해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성재호 교수도 “협상 과정의 실책을 문제삼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책판단은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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