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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연구소(일류의 현장 선진연구소에 가다: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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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과학기술 무한경쟁시대… 앞서가는 비밀을 찾아서/「잘팔리는 상품」 연구로 밤지샌다/정보·통신 중심 「고객지향」 방향 선회/살벌한 일류추구… 내놓을 것 없으면 못배겨/곳고서 토론·논쟁… 대응력 큰 공동연구 강점
『노벨상을 탈만한 연구가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를 마라.』
한때 컴퓨터 왕국으로 불렸던 IBM의 연구자들 사이에 최근 농반진반으로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
IBM은 지금까지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민간연구소. 이런 유수의 연구소에서 『세계 제1의 연구가 아니면 집어치워라』는 얘기가 새삼 화제가 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연구의 질이 떨어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 말은 이제 노벨상이 목표인 연구는 IBM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역설에 다름아닌 것이다. 자신의 연구를 기초과학분야에,그것도 극소수에 한정된 노벨상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연구자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연구소측이 연구원들에게 실제 바라는 것은 돈,돈,돈…. 『돈이 되는 연구를 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IBM은 최근들어 연구자들은 학문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드는데 연구개발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큰 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IBM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컴퓨터업계의 1인자로 군림했다. 연구원들은 그들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컴퓨터와 전혀 관계없는 생물학·천문학 등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해당분야에서 세계 일류의 학자들로,한때 IBM에서는 『우리는 과학에 관한 문제는 연구소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들어 일본의 도시바·NEC를 비롯,미국의 인텔·애플·컴팩 등의 집중공격을 당하자 IBM의 신화는 맥없이 깨지고 말았다. 패인은 『소비자의 욕구 변화를 너무 몰랐다』는 한줄로 요약됐다. 이는 연구소로서는 『(소비자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연구를 너무 많이 했다』는 말로 풀이됐다. 토머스 윗슨연구소에서 25년동안 근무해온 한국계 홍세준박사는 『같은 내용의 연구를 IBM안에서만 3∼4개팀이 달라붙어 경쟁적으로 추진한 적도 많았다』고 말한다.
요즘 IBM안에서 정보·통신분야와 무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어깨를 떳떳이 펴고 다니지 못한다. 또 회사측은 어느 때보다 효율을 강조하는 분위기여서 하고 싶은 연구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때문에 적지 않은 유능한 인재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91∼93년사이 6백여명의 연구인력이 IBM을 떠나야 했다.
이와함께 지난해초 IBM 산하 주요 연구소들은 대대적인 조직수술을 단행했다. 당시 조직개편의 핵심은 SAS(Services Applications & Solutions)라는 매머드급 신설 부서의 출현으로 연구인력의 20%가 SAS파트에 재배치됐다.
SAS신설은 IBM이 변신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SAS를 설치한 것은 한마디로 『연구소도 자체적으로 벌어먹고 살라』는 충격선언이었다. 위로 모기업이 있는 민간연구소가 모기업 아닌 다른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따내 운영하는 조직을 둔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거의 찾기 힘든 사례라 하겠다.
발족 1년이 지난 지금 SAS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통 1∼2개의 연구과제에 매달렸던 과거와 달리 3∼4개의 프로젝트에 빽빽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또 돈이 될만한 연구거리를 찾아 다른 기업이나 정부기관을 기웃거리고 있다. 외부로부터 따온 대형 프로젝트중에는 경쟁기업인 유니시스사의 대형컴퓨터 칩을 만들어주는 일도 포함돼 있다.
SAS 총책임자 산자야 아단키는 『소비자가 컴퓨터나 관련 부품·주변기기·응용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면서 닥치는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SAS의 주임무』라고 말했다. 사내외 할 것없이 고객의 문제를 찾아 고객이 원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말이다.
「고객 지향의 연구」로 목표는 변했지만 IBM의 연구풍토는 여전히 치열하기만 하다. 성균관대 황대준교수(정보공학과)가 전하는 경험담은 살벌할 정도로 일류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풍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지난해 12월14일 토머스 윗슨연구소에 들어가 3개월여의 연구를 마치고 최근 귀국했다. 『오전 10시40분쯤 존 F 케네디공항에 내렸습니다. 차로 1시간께 달려 연구소에 도착하더니 점심을 먹이고 나서 바로 세미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차적응도 안된데다 세미나가 원래 예정돼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척 당황했습니다. 2시간30동안 관심분야에 대해 발표하는데 질문이 빗발치듯 쏟아지더군요. 나중에 들었지만 그같은 세미나를 통해 방문연구자의 수준을 매긴 답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따라 출입증이 달라진다더군요.』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출입증만이 아니다. 별볼일 없는 연구자로 판단되면 하루종일 『굿모닝,굿바이』외에는 말을 붙여오지 않는 것이다. 얻어낼 게 없는 사람은 상대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IBM의 뜨거운 연구열기는 2백m가량 되는 토머스 윗슨연구소의 길다란 복도 중간 중간에서도 감지된다. 복도에 설치된 10여개의 간이 휴게실에는 어김없이 백판이 설치돼 있다. 백판마다 복잡한 수식과 그림들로 항상 가득차 있다. 화장실에 가다가,혹은 커피 한잔을 마시러 나왔다가도 곧잘 연구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는 것이다.
황 교수의 또 다른 체험담.『컴퓨터·정보통신 분야의 연구는 하루가 다를 정도로 새로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때문에 논문으로 입수한 정보는 한 물간 것일 때가 많습니다. 첨단 정보는 연구자의 머리 속에 있을때 빼내야만 가치가 있지요.』 그는 활발한 토론 분위기가 연구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IBM이 옛날의 명성을 되찾으면서 초일류 기업으로 다시 도약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IBM맨들은 자신들이 아직 연구개발력에서는 세계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다만 시장의 변화와 기술의 상용화에 게을렀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1백대 1의 경쟁을 뚫고 박사후연수생으로 와있는 일본 이바라키대 다마키 히스고(옥목구부) 교수는 『이곳의 연구조직은 매우 유연하며 급격한 상황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IBM은 여전히 컴퓨터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있습니다』라고 평했다.
그는 일본 기업연구소의 경우 미국에 비해 연구분위기가 경직돼 있어 혼자 연구는 잘하지만 공동연구에는 다소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연구진들도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라 하겠다.<요크타운 하이츠(미 뉴욕주)="김창엽특파원">
◎IBM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세계 5곳에 설립… 연구비 총매출의 10%
IBM(Internation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 연구소의 모태는 지난 45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캠퍼스 한 구석에 차려진 조그만 실험실(윗슨 과학계산연구실)이었다. 이 회사의 실질적 창업자인 토머스 J 윗슨이 당시 이 대학 천문학과 교수였던 월러스 J 액컬트의 컴퓨터 연구를 후원하면서 연구소를 지어준 것이었다.
오늘날 IBM을 대표하는 토머스 윗슨연구소는 61년 뉴욕에서 북쪽으로 1시간(자동차) 남짓거리인 요크타운 하이츠라는 곳에 세워졌다. IBM은 이외에도 알마단연구소(캘리포니아 산호제이),취리히연구소(스위스),동경연구소(일본) 등 4개의 대형연구소를 두고 있고 이스라엘에는 중급 규모의 연구그룹이 있다.
이들 5개 연구소·그룹은 총 2천6백여명의 과학기술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약 3분의 1이 박사학위 소지자. 연간 연구예산은 약 4억5천만달러(93년)로 이는 모기업 총매출액의 10%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다.
모기업으로부터 이런 막대한 돈이 투입됨에도 불구,IBM은 90년초까지 시장에 내놓을 물건보다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하는데만 주력한다고 할만큼 기초과학쪽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경쟁기업의 연구진 등으로부터 『독창적인 연구 하나는 끝내준다』는 부러움 섞인 비아냥을 들었다.
연구분야는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의 전분야라 할만큼 다양했지만 2∼3년전부터 군살빼기를 시작하면서 대략 ▲컴퓨터 ▲시스팀기술 ▲통신분야로 압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연구소의 모토는 「우리의 과학기술로 유명해지자. IBM에 꼭 필요한 과학기술이 되도록 하자」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오로지 후자만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초과학을 강조하던 과거의 연구분위기에서 86년 취리히연구소의 게르트 빈니히와 하인리히 로러는 주사형 전자투과현미경을 발명한 공로로,또 이듬해에는 역시 취리히연구소의 알렉스 뮐러와 게오르그 베트노르츠가 고온 초전도체를 발명,연거푸 노벨물리학상을 거머쥐는 개가를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지금 IBM의 연구자들에게 이런 영광은 「화려했던 추억」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뛰어난 연구업적을 내놓고도 정작 실용화는 경쟁사에 뒤져 고배를 들이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윗슨연구소에는 현재 한국인 학자들이 30여명 근무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으로서는 중국·인도(각 1백명 내외)·일본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숫자라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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