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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학원액숀로망? 장르도 세포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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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 '말죽거리 잔혹사' 포스터를 보니 '1978년, 우리들의 학원액숀로망'이라고 씌어있던데 학원액숀로망이 무슨 뜻인가.

A : 학원액숀로망이라는 장르는 없다. 영화 홍보와 마케팅의 필요 때문에 영화사에서 만든 말일 뿐. 1970년대 말 강남의 한 고교에서 벌어진 일이니 '학원(學園)'이요, 리샤오룽(李小龍)을 존경해 마지않는 주인공(권상우)이 쌍절곤을 연습해 선도부원을 제압하는 줄거리니 '액숀'이다. 왜 '액션'이 아니라 '액숀'이냐. '대한 뉴스'를 '대한 늬우스'라고 하지 않던가. 70년대라는 시대색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로망' 은 세 남녀 주인공이 펼치는 사랑과 우정, 배신 때문에 붙였다.로맨스나 낭만을 구태나게 표현한 것이리라.

최근 영화들이 달고 나오는 장르 이름은 콧물.기침.가래.몸살.두통에 두루두루 다 좋다는 복합감기약처럼 복잡하기 짝이 없다. SF니, 멜로니, 액션이니 하는 식으로 2대8 가르마 타듯 딱 잘라주면 좋으련만. "영화의 성격 내지는 성분(!)이 복잡해져 전통적인 장르 명칭만으로는 정보를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영화사의 변명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가령 공포 영화에 해당하는 '장화, 홍련'은 '하우스 호러'다. 두 자매가 사는 집이 공포심을 유발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나. 10년 전 같았으면 그냥 '코미디'였을 '황산벌'은 '퓨전코믹사극'이고. 서기 660년의 백제와 신라라는 배경에 지금 우리가 쓰는 영.호남 사투리를 접목했다해서 퓨전이라 붙였다.

5월 개봉 예정인 액션물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도시 무협'이다. 무협에도 도시형, 농촌형이 있나? 이런 이의를 제기할 농촌 관객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도시 한복판에 도인들이 숨어있다는 컨셉트를 한 단어로 전하려는 관계자들의 고심의 산물이다. 말도 안되는 조어이거나 '코믹쌩쑈'같은 유치뽕짝만 아니라면 '잘 지은 장르 이름 하나,열 홍보 안 부럽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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