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5부] 봄 (132)·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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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그건 안 돼. 밀키는 똑똑해서 널 따르지 않을 거야. 네 맘에 들지 않아도 밀키는 그냥 밀키야…. 그리고 고양이들은 물을 싫어하니까 절대 물총을 쏘거나 괴롭히면 안 돼. 알았지?”
 
제제는 다시 입을 삐죽이더니 대답했다.

“사는 게 참 맘대로 안 돼.”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이 제제를 쳐다보았다.

“형아 깨워라. 누나 떠나는 날인데 같이 아침 먹게.” 우리네 식구는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어젯밤에 생각해두었던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실은 오늘 그냥 혼자 갈래. 터미널까지 택시 타고 가서 거기서 버스 타고 갈래.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새 친구하고 그러기로 했어.”

“말도 안 돼. 짐도 많고.”

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는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잠시 후, 말했다.

“제제 말이 맞아…. 사는 게 참 맘대로 안 돼.”

그러자 제제가 눈을 반짝거리며 끼어들었다.

“맞아…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야.”

제제의 말투는 평소의 엄마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나는 엄마가 끓여준 시금치 된장국과 잘 구워져서 반짝이는 김과 선홍색 명란젓갈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언젠가 내가 집이 그립고,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이 아침 식탁을 기억하고 싶었다. 사는 건 참 맘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싶었다. 내가 앉은 가시방석이 꽃자리라는 말과 함께.
 
막딸 아줌마가 서둘러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내게 꾸러미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물으니 “속옷이야. 맘에 들지 모르겠다”하며 웃었다. 엄마가 서둘러 “돈도 없는 분이 뭘…”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막딸 아줌마를 향해 웃었다.

“아줌마 나 주말에 올 때 맛있는 잡채 꼭 해 주세요.”

아줌마는 언제나처럼 수줍게 웃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아줌마 혹시 시집가실 때는 제가 올 테니까 연락하셔야 해요.”

엄마는 몇 번을 내게 정말 혼자 떠나도 되느냐고 묻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파트 입구에는 뜻밖에도 다니엘 아저씨가 나와 계셨다. 아저씨는 차 앞유리를 닦고 있다가 내게로 다가와서 내 가방을 들었다. 내가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가 말했다.

“다니엘 택시야. 터미널까지만 부탁했어. 그건 괜찮지?” 아저씨가 내 짐을 싣는 동안 나는 둥빈과 제제에게 다가가 그 아이들을 안았다. 그러자 난데없이 내가 그동안 좋은 누나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떠난다는 것은 꼭 나쁜 일만은 아닌가 보았다. 이런 착한 마음도 가지게 되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나를 안았다.

“위녕, 넌 참 이쁘고 좋은 아이야. 언제든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의 열쇠는 바로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말이다. 엄마는 내게 그 열쇠로 세상의 문을 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고 싶었다.

아저씨의 차에 타고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두 동생들과 함께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결단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끝 -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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