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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게이트 없다던 '노무현 청와대'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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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와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말엔 세 가지가 없다. 정치 공작이 없고, 게이트가 없고, 레임덕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역대 정부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청와대의 자부심에 상처를 내는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변양균 정책실장이 '허위학력 파문'의 주인공인 신정아씨와 관련한 외압 시비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에 28일에는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이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의 수뢰사건에 소개자로 연루됐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386 핵심 참모라는 점에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겉으로 청와대는 결백하다는 입장이다. 천호선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정확하게 확인된 근거도 없이 의혹을 증폭시키는 태도는 사라져야 한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청와대 안에서조차 연이은 의혹들을 놓고 임기 말 증후군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마다 임기 말에 야당의 정치 공세와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에 흔들리곤 했다"며 "최근 들어 무차별적인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건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에 관한 정보들은 검찰이나 국가정보원 같은 권력기관이 은밀하게 확보하고 있어 좀처럼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정치권 일각에선 평소 잘 관리돼 왔던 정보들이 한나라당 경선으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에 흘러나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유력한 야당 단일 후보의 등장으로 관료사회에서 임기 말 권력 이동→은밀한 정보의 유출 현상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선지 청와대 내부의 입단속은 부쩍 심해졌다.

신정아씨 문제와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변 실장은 이날도 청와대에 출근했으나 침묵했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中)이 28일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유공자 격려 오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정 전 비서관 문제와 관련해서도 청와대 측의 해명은 천호선 대변인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천 대변인은 정 전 비서관이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차원에서 별도로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부산지검에서도 (정 전 비서관의 경우) 뇌물 수수 행위와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사건이 끝났고, (청와대 비서관직을) 그만둔 사람의 일을 청와대가 다시 끄집어내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또 청와대가 정 전 비서관 문제를 알게 된 시점도 정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구속 기소된 시점에 "정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도 이미 종결한 사건"이라며 "청와대가 나설 사안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국정원의 정보가 외부에 유출된 데 이어 검찰 관련 정보들이 의혹을 담아 외부에 유출되는 사태가 잇따르는 데 대해 청와대는 경계하고 있다.

올 초부터 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참여정부에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은 없다"고 강조해온 터라 더욱 그렇다.

민주신당의 한 관계자는 "레임덕은 정부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자연 현상과 같은 것"이라며 "청와대가 이번 기회에 레임덕과 자꾸 싸우려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레임덕을 슬기롭게 관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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