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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대선 출사표 던진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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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범여권 대항마’를 자처하고 나선 문국현(58·사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24일 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선뜻 기자에게 우선 시간을 내준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경영자 문국현’을 쓰겠다는 설득에 솔깃한 것이다. 그는 “나의 정치 선언에만 초점을 맞춘 세간의 관심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30년 가까이 기업에서 일군 경영혁신 성과를 안 보고 단순히 ‘환경운동가’의 이미지에 묻혀버리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유한킴벌리는 사회단체가 아니라 기업이며 저 역시 사회사업가가 아니라 경영자로서 생산성과 이익률 같은 기업 본연의 가치와 경쟁을 중시합니다. 다만 일부 기업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기업의 본질적 목표가 사회성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성을 통해 기업 가치가 실현된다고 믿는 거죠.” 그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1974년 유한킴벌리에 입사해 95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쌍용, CJ,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과 P&G 같은 다국적 기업의 공세로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은 18%대에 불과했다. 수익률은 마이너스까지 곤두박질쳐 일부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후 그가 혁신에 나선 지 10여 년.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말 기저귀 시장에서 71.8%, 생리대 시장에서 55.7% 등 전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뉴웨이(NEWAY)’에서 e-NEWAY로 이어지는 2단계 혁신을 통해 매출은 3배, 순이익은 11배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로에 가까운 이직률로 2003년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이 주관한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조사에서 6위로 선정됐다. 올해 능률협회에서는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뽑았다. 기업인은 실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그는 분명 능력있는 CEO로 볼 수 있다. 그는 세계 최고경영자로 불리는 잭 웰치 전 GE 회장과 한판 승부를 벌인 적이 있다.
지난해 정부에서 주최한 국제부품소재산업포럼에서 한국 대표로 지명돼 미국 대표로 나선 잭 웰치와 설전을 벌였다. “인원 감축을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잭 웰치의 주장을 문 전 사장이 가로막았다. “일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인사관리체계를 전환하면 더 큰 생산성이 나올 수 있다”고 받아친 것이다. 여세를 몰아 그가 “대기업과 중소업체 간 상생이 효율성을 더 높인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잭 웰치가 승복한 듯 맞장구를 쳤다. 잭 웰치는 얼마 후 그에게 “당신 같은 경영자가 한국에 1000명만 있어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는 e-메일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는 실제로 유한킴벌리 사장 시절 ‘하위 10% 퇴출’을 주창한 잭 웰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혁신을 했다. 인력감축을 할 수밖에 없던 외환위기 때 그는 ‘4조2교대’(보통은 3조2교대)라는 재계에서 납득하기 힘든 방안을 내놓았다. 4개조 중 2개조는 일하고 1개조는 쉬고, 나머지 1개조는 학습을 하는 시스템이다. 어찌 보면 인력낭비처럼 보이는 이 제도는 의외로 높은 생산성을 가져왔다. “직원들이 지쳐 있으면 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과로를 유발하는 근무체계를 학습체계로 바꾼 것이 성공비결입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공부를 시킨 거죠.” 그 결과 직원 한 명이 일년에 300시간이 넘는 교육을 받았고, 이를 통해 직원들은 일년이면 10건 이상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창조력을 뿜어냈다. “CEO는 최고교육책임자(Chief Education Officer)가 돼 직원교육에 전폭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가 5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현장에서 검증한 4조2교대 효과에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에 비해 근로시간이 30%나 많은 과로상태죠. 제도적 기준을 만들어 이를 개선하면 실업문제도 해소하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그가 개발한 경영전략의 핵심은 ‘3H이론’이다. 직원들의 손(Hand)보다는 머리(Head)를, 머리보다는 마음(Heart)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손만 사용하면 잠재력의 30%만을 끌어낼 수 있지만, 머리를 움직이면 50%, 마음을 움직이면 120%까지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경영관에는 세계적인 경영석학 피터 드러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피터 드러커 박사가 작고하기 1년 전인 2004년 그는 꿈에 그리던 스승을 처음 만나게 됐다. “사택을 방문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밖에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활기차게 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생학습을 하면 늙을 시간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미망인 도리스 여사가 그를 자식처럼 여길 정도로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한국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그래서다. 중국에서는 그를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부를 정도라고 한다. “李는 20세기 CEO 나는 21세기 CEO다” 그는 2002년 킴벌리클라크 본사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중국·대만·홍콩·일본·몽골 등 킴벌리클라크의 북아시아 경영을 총괄하기까지 했다. 그가 취임한 바로 다음해부터 적자를 기록하던 킴벌리클라크 대만이 흑자로 전환됐고, 중국에서도 매년 30%씩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그는 고건 전 총리의 추천으로 환경부 장관직을 제의 받았지만,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이를 고사했다. 그 사이 무려 20개 넘는 지역에 수출선을 뚫었다. 장관직과 맞바꾼 성과다. 그는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와는 ‘세기’가 다른 경영자임을 주장했다. “이 후보는 이미 경영 일선을 떠난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 경영자죠. 게다가 건설 쪽에서만 전문성을 가진 분 아닙니까. 21세기 경영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분야를 다룰 수 있어야죠.” 이 후보와는 달리 자신은 총체적인 경영혁신을 주도한 ‘21세기 경영자’임을 강조했다. “제가 정립한 기업혁신 모델인 ‘뉴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부문 등 180여 곳에 도입돼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젠 이것을 국가경영에 적용하기 위해 출마한 것입니다.” 그는 이 후보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 숲’ 조성과 청계천 복원 등에 자문역을 맡을 만큼 이 후보와 유대감이 있었다. 그러다 난지도 골프장 문제로 사이가 벌어졌다. “10만 시민이 휴식할 수 있는 녹지를 고작 100명이 즐기는 골프장을 만들자는 게 말이나 됩니까. 추진력 강하기로 소문난 이 후보가 그땐 왜 그걸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나 안타까웠죠.” 그러다 대운하 구상이 나오자 전혀 다른 경영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한다.

“지금은 자연을 파괴하는 대운하가 아니라 환동해, 환서해를 엮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경제협력 벨트를 성장엔진으로 가져가야 할 때입니다.” 재계에서 문 전 사장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 전 사장이 실속 있는 경영을 하기보다는 이미지 경영으로 과대 포장한 면이 많다”며 “일부에서 ’재계의 노무현’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꼬집었다. 유한킴벌리를 경영하면서 환경 등 각종 캠페인만을 많이 했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가라는 이미지도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수많은 펄프용 나무를 잘라 쓰는 기업 CEO인데 무슨 환경운동가 이미지로 부각되느냐는 얘기다.   특히 그의 경영실적이 좋다고는 하지만 아직 검증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사실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에 불과한 기업의 CEO로서 경영능력을 인정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그가 자랑하는 4조 2교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은 대기업에서는 먹혀 들기 힘든 이상적인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일각에선 그가 이 후보의 대항마로 급부상할지도 모른다고 점치기도 하지만, 지지율은 거의 1%대로 논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전혀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지인들 중 3분의 1은 만류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출마하고 나니 모두 지지자가 돼 주었습니다. 지지선언을 해준 의원들도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죠. 제 기사에 댓글이 2000개나 달린답니다.” 그래도 시간이나 여건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든지 충분하면 성공하기 힘들죠. 뭔가 부족해야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임광 객원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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