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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레터] 혹시 일본소설 ‘덩달이 팬’이신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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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본 소설 붐이 갈수록 뜨겁습니다. 공식 집계를 하는 곳이 없어 수치를 댈 수는 없지만 매주 도착하는 신간을 보면 일본소설이, 나머지 국가의 번역소설보다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현대 도시의 일상을 그리는 일본 작가들의 섬세함 혹은 기발함이 우리 독자, 특히 20대 여성들의 감수성에 맞다고 합니다. 구미 소설들보다 우리 정서와 가까운 때문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들 탓이 더 크다고 봅니다. 일본 소설이 좀 팔린다 싶자 너도나도 뛰어들어 일본소설을 펴냅니다. 그게 독자나 출판계에 “어, 일본 소설이 유행인가 보네”란 환상을 심어 붐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하는 거죠.
 독자들 취향이 그리 쏠리고, 출판 풍토가 그렇다는데 이렇다저렇다 할 것은 없습니다. 일본 문학이라 해서 타기할 의도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엔 눈 감기 힘듭니다.

 유명한 일본 작가의 경우 집필 소식만 듣고 우리네 출판사들이 달라붙는답니다. 그것도 선인세 1억원에서 경쟁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팔린다 싶으면 그의 다른 작품을 잡기 위해 출판사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기도 예사입니다. 심지어 국내출판사끼리 과열경쟁으로 저작권료만 오르고, 일본 출판사들은 한국 수출을 위해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한다며 한숨 쉬는 출판인도 만났습니다.

 나오키 상 등 일본에서 손꼽히는 상을 받은 작가는 몇 년내 초기작까지 쏟아집니다.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 해서 소설의 질을 담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은 문학상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문학상이 많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지자체, 서점 등에서 온갖 이름의 상을 줍니다. 그 중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처럼 독특한 이름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불후의 명작상’은 왜 없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얼마 전 일본 와세다 대의 다카하시 도시오 교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고도 자본주의가 양산해낸 보편성만을 지니고 있을 뿐 세계문학은 아니다”란 글을 한국의 한 문예지에 실었답니다.

자신의 독서목록에 일본소설 비중이 크다면 출판계의 ‘덩달이 기획’에 휩쓸린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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