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개발과 환경’ 딜레마, 박람회도 예외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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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만국 박람회 환상

요시미 슌야 지음
이종욱 옮김
논형, 319쪽, 1만8000원

  만국 박람회나 엑스포는 일반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관람객에겐 최첨단 기술의 향연이나 선진 문명의 진열장일 수 있다. 또 단순히 재미를 안겨주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흥행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기술과 문화가 세계 각지에서 총집결하는 행사이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만다면 절반쯤은 놓치는 셈이다. 화려한 만국 박람회 뒤엔 가려진 이면이 있다. 정치적, 상업적 이권이 무수하게 걸려 있다는 얘기다. 주최국이 이를 너무 의식하면 박람회의 순수성을 해칠 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물고 늘어진다.

  지은이는 대략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을 가한다. 첫째는 박람회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이 늘 변두리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보’, ‘문화의 향연’ 등 슬로건은 거창하지만 정작 이를 주도할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은 주변적 역할에 그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두 번째로는 만국 박람회가 지역 개발에 초점을 두다 보니 자연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오사카 만국 박람회를 비롯해 일본이 주최한 굵직한 박람회가 어떻게 자연을 훼손했는지 설명한다. 예컨대 오사카 박람회 탓에 울창한 숲이 자취를 감추고 휑뎅그레한 평지가 펼쳐진 인공도시가 조성됐다고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지은이는 만국 박람회를 개인의 풍요로움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지역을 개발하려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규정한다.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대안이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지은이는 개발을 위한 행사보다는 시민 참가형 박람회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먹힐까. 우리나라만 해도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정부, 지자체, 기업들이 거국적인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박람회를 통해 지역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입장에선 “그럼 어쩌란 말이냐”라는 반발이 나올 법하다. 개발과 환경 사이의 팽팽한 평행선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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