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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소득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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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3세기 서구문화의 종교적 위기는 교회·성직자의 타락과 부패에서 비롯되었다. 그 무렵의 종교문화가 인류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한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교회의 부패를 「비극적인 혼란」으로 표현한 것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성베르나르는 『교회는 나그네로부터의 약탈품으로 가득찬 도둑의 소굴로 변했다』고 개탄했고,이탈리아의 강력한 사회지도자였던 아놀드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세속권을 행사하는 성직자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세속적인 것은 일체 군주와 속인에게 내맡기고 교회는 복음서에 기록된 청빈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개혁운동에 뛰어들었다.
종교와 정치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던 때였으므로 교회의 부패가 정치권의 동조내지 묵인아래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도승단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개혁운동이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교회들이 여전히 실정법 테두리 밖에서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종교현실과 그 무렵 교회의 부패상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오늘날에도 각종 종교들이 「인간 영혼의 구제」라는 종교 본래의 절대적 사명을 수행한다는 명분아래 여러가지 면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비판은 귀담아 들을만한 여지가 있다. 물론 대다수의 교회와 성직자들은 그들 본래의 사명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재물에 대한 헛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몇몇 교회와 성직자들이 종교계의 부정과 비리를 낳고 있음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나 성직자들이 그들이 모시는 신은 물론,그들의 인도를 통해 영혼을 구제받고자 하는 신도들에게도 떳떳하기 위해서는 그들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생활인이며,따라서 모든 법과 사회적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게 마땅하다. 작년 이맘때 추기경이 『종교계도 재산공개가 필요하다』고 발언한데 이어 천주교 주교회의가 성직자도 소득세를 납부키로 한 결정은 종교계에 획기적인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종교활동으로 인한 소득은 근로소득이 아니다』고 주장해온 다른 종교의 일부 성직자들이 이번 천주교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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