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포기하는 습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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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청년이 상담실을 찾았다. 그러나 몸은 청년이었지만 마음은 임종을 앞둔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는 무엇을 시작해서 끝을 맺어본 일이 없다며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중도포기로 점철된 삶이었다. 고교 중퇴, 어학연수 중도 포기, 자격증 시험 중도 포기…. 어디 그뿐인가! 아르바이트나 운동을 해도 중간에 그만두고, 연애도 백 일을 넘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컴퓨터 게임도 중간에 흥미를 잃어 이것저것 바꾸곤 했다. 힘들게 시작하고 쉽게 포기하는 습관이 자라면서 더 굳어진 것이다. 그가 삶에서 유일하게 끈기를 보여 온 것은 ‘귀찮고 힘든 일은 하지 말자!’는 마음뿐이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포기가 꼭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억을 위해 망각이 필요하듯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역으로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포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살며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지만 아직 실현시키지 못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를 가능성·재능·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상담실이 아니라도 주위에는 일찍이 삶의 가능성을 닫아 버린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특이하게 ‘병적 게으름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어떤 공통점이 있다. 첫째, 끈기와 맷집이 부족하다.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경우다. 이들은 고난을 겪고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이 부족하다. 맞지도 않았는데 맷집이 강해지는 권투선수를 보았는가? 둘째, 회피감각만 발달하고 선호감각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기 싫은 감각은 고도로 발달되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극도로 둔하다. 그렇기에 자기 연장으로 자기 기술을 만들지 못하고 빌린 연장으로 남의 기술을 흉내 내며 힘들게 살아간다. 셋째, 이들은 ‘흠 없는 성공’이나 ‘한방의 성공’ 을 바란다. 이들의 내비게이션은 직진만을 안내할 뿐 우회로를 찾지 못한다.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에 부딪쳐 흠집이 나면 엔진과 차체가 멀쩡해도 멈춰 버린다. 결국 ‘쉬운 성공을 원하는 마음’ 곁에는 늘 ‘쉽게 포기하는 마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나는 그 청년에게 좀 더 다가가 앉았다. 나는 그에게 눈사람을 만들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눈 뭉치를 단단하게 뭉쳐서 굴리기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와 나는 변화의 눈 뭉치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무엇보다 긍정성 훈련이 필요했다. 우선 한 달 동안 잠들기 전에 자기격려와 원하는 미래상을 떠올리는 마음훈련을 갖게 했다. 한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과제를 마친 그는 ‘어! 나도 끝맺는 게 되네요!’라며 좋아했다. 그를 둘러싼 견고한 무력감의 성곽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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