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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38) 서울 노원갑 열린우리당 고영하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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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국민을 두려워하면 머지않아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의 필요조건이 바로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가 따르는 상향식 공천이구요.”

지난 14,15대 때 서울 노원구에서 출마해 연거푸 고배를 마신 고영하(52) 동북아시대연구소장은 상향식 공천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정치인을 선별하는 정치 시스템이 잘못돼 정경유착과 고비용저효율의 악순환을 끝장낼 수 없었습니다. 정당 보스가 주는 낙하산식 공천을 받는 후보는 지역에 자생적인 지지기반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돈을 매개로 한 선거를 치를 수밖에요. 반면 국민들이 직접 하는 공천을 받으면 뽑아 준 주민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국민에 의한 정치도 가능해 지죠.”

고씨는 고비용 정치의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많은 돈을 써서 당선되면 돈 대준 사람들을 위해 이른바 ‘신세 갚기’ 정치를 하게 된다는 것. “돈 선거로 당선된 사람들은 또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지구당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돈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게 마련이고, 결국 그들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게 돼 있다”고 그는 강변했다. 반면 누구에게도 돈 신세를 지지 않은 자신은 오로지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엉뚱하게 자기 자신을 지목했다. ‘국회에 들어가야 개혁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당선 자체에 집착하다 보면 ‘부끄러운 당선’을 할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이를 경계한다는 것.

“말 장난이 아닙니다. 1천9백여 표 차로 낙선이 확정된 새벽 어스름에 저를 도왔던 동지들이 물었습니다. ‘선거법 다 지키고 원칙을 지킨 결과가, 그래 이거냐고.’ 그 때 ‘세상은 점점 투명해 지고 있고, 나는 아직 젊다’고 위로했습니다. 과정이 얼마나 순수하고 정당했느냐에 따라 결과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신념과 원칙을 버리지 않는 고집이야말로 저의 장점이자, 제가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입니다”

고씨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71년 집안의 기대에 부응해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맞서는 바람에 두 번 제적 당했다. 결국 학업을 포기했고, 의사의 길을 접어야 했다. 이런 뜻하지 않은 노선 변경에 대해 그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치유하라’는 또 다른 사명의 부여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 후 그는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지난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정무특보로 일했고, 지난해 국민참여통합신당 창당기획단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노 대통령에 대해 그는 “사심이 없고 비교적 깨끗한 대통령”이라며 “점차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 인정받는 정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 노원갑지구당 창당대회를 마치고 두 딸 은아(오른쪽)·우리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고영하씨.
“아빠 사진이 붙은 피켓을 흔들면서 환하게 웃던 녀석들이 어느 새 아빠만큼 키가 커졌고, 제법 숙녀 티가 납니다.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휑해 질 때가 있어요. ”맏딸 은아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가장의 두 번째 낙선을 겪었다.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어린 딸은 “아빠가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씨도 심각하게 정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 훗날 아이들한테서 ‘우리 아빠는 참 괜찮은 정치인이었어!’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정치를 계속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라도 보상해 줘야죠.”

그는 당선되면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의 거품을 빼겠다”는 말도 했다.

“국회의원들이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소비도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등원하면 관행대로 7급 정책보좌관을 기사로 쓰지 않고, 직접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겁니다. ”

그는 지역 주민들에게 “후보들의 품성과 자질을 꼼꼼히 비교해 보고, 스스로를 위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사람을 위해 유권자들 스스로 선거운동을 해 주면 적은 돈 쓰고도 당선될 수 있고, 당선자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 전체 국민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출사표를 던진 노원갑은 여의도 입성 도전 ‘삼수생’인 그의 오랜 생활 터전이다. 그는 두 번의 선거에서 허울뿐인 선거법을 지켜가면서 깨끗한 선거를 치른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국회의원으로 뽑고 나선 지속적인 감시를 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은 당선자의 국정운영 능력과 도덕성을 감시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스스로 내건 공약을 지키지 않을 땐 당연히 다음 선거에서 책임을 물어 낙선시켜야죠. 그동안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법을 만들고 기득권 집단을 위한 정책을 편 것은 공천권을 쥔 보스에게 잘 보이고 선거 때 돈을 뿌리면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됐든, 사람됨과 의정 활동의 가능성만 보고 찍어 주십시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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