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amily어린이책] 파헤쳐진 구덩이, 소년원엔 무슨 비밀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루이스 쌔커 지음, 김영선 옮김, 창비
366쪽, 9000원, 중학생 이상

 출판사 창비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의 둘째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게 시리즈 기획 목적이라는데, 그에 딱 떨어지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긴장감이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소년원의 강제노동, 대대손손 이어지는 가문의 저주, 인종차별로 인한 비극적인 사랑-가 처음엔 각각 전개된다. 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아귀가 딱딱 맞게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책 제목대로, 독자는 ‘구덩이’에 빠지듯 책에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은 뚱보 소년 스탠리 옐네츠 4세다. 옐네츠 가문은 대대손손 나쁜 운수에 시달린다.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가 집시 여인과의 약속을 어겨서다. “너와 자손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거야”란 집시 여인의 말 때문일까. 주식으로 큰돈을 번 스탠리의 증조할아버지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다 사막에서 무법자 ‘키스하는 케이트 바로우’를 만나 전 재산을 빼앗겼다.

 스탠리도 운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유명한 야구 선수의 신발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소년원의 이름은 ‘초록호수캠프’지만, 호수는 없었다. 원래는 있었다는데 110년 전 갑자기 말라버렸단다. 110년 전 그곳에선 비극적인 사랑이 있었다. 백인 여선생 케이트 바로우와 흑인 양파장수 쌤이 사랑에 빠졌다. 인종차별이 심할 때였다. 백인과 키스하는 흑인은 교수형에 처해질 때였다. 도망치던 쌤은 결국 죽었고, 케이트 바로우는 서부를 통틀어 가장 무서운 무법자가 된다.

 소년원에 들어간 스탠리는 ‘인격수양’ 명목으로 매일 구덩이를 한 개씩 파야 했다. 그곳 아이들 모두 같은 임무를 맡았다. 어느 날 구덩이에서 ‘KB’라고 적힌 립스틱 뚜껑이 나오자 소년원 원장은 흥분한다. 아이들을 재촉해 그 주위를 집중적으로 파게 하는데…. 원장은 몇 십 년째 이 사막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통쾌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 사이 수없이 깔린 복선들을 거둬들이는 맛은 추리소설에 버금간다. 학교의 왕따 문제, 소년원에서의 인권 문제, 인종차별 문제 등 묵직한 생각거리도 많다.

 사실 원제가 『홀스(Holes)』인 이 소설은 이미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책이다. 영어원서가 몇몇 외고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8년 출간돼 99년에는 뉴베리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30여 개국에서 번역돼 총 500만 부나 팔린 히트작이다. 출판시장 규모로 세계 7위라는 우리나라에서 이제야 번역됐으니, 그동안 우리 출판계에서 청소년문학이 얼마나 ‘찬밥’이었는지 알 법하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