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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적 대중문화 만끽-젊은 작가 주인석이 본 신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광고를 TV에서 보면서 나는 이런생각을 했다.새로운 광고가 나타났군.상품광고가 왜 새로운 상품을 광고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광고할까.그게 소위 신세대문화인가. 새로운 세대는 항상 있어왔다.전후세대,4.19세대,6.3세대,유신세대,광주 혹은 5월세대.대략 10년 단위로 무슨커다란 정치적 격동과 함께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고,그들은 자신들의 20대 전후에 벌어진 중대한 사건의 이름으로 호명 되었다.1990년대의 달력이 벽에 걸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무슨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혹은 기대에 휩싸였었다.그러나 불행인지,다행인지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을 뿐.그러니 그들을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1990년대의 서울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는 그저 새로운 세대다.신세대,이름없는 세대.
지금 장안은 온통 그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풍문으로 떠들썩하다.TV에 광고까지 나왔으니까.다른 어떤 세대보다 그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선전.선동술을 가지고 있다.그런데도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좀체 알 수 없다.비밀에 둘러싸인 세대 ,X세대.
그들의 비밀을 벗겨내 보자.그들은 어떻게 태어나,어떻게 성장해 왔는가.풍문에 의하면 그들은 1960년대 후반,아니면 7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고 한다.그렇다면 그들은 3選개헌,그리고 유신과 함께 태어난 겨울공화국의 아이들인 셈이다.
열살 무렵 그들은 그 끔찍한 「광주의 비극」을 목격했으리라.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불행한 세대다.그런데 그렇지 않다.오히려그들의 유년의 기억은 조국 근대화와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희망찬 슬로건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한강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3低 호황을 거치면서 그들의 유전자에 잠복되어있던 가난한 한민족의 보릿고개에 대한 집단무의식적 공포도 사라졌고,갈비굽는 냄새에도 별반 감흥이 없어지고 자가용승용차쯤은 이제 생활필수품이 되어갈 무렵,그들은 88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축제를 맞이했으리라.냉전이 종식되어 전쟁콤플렉스도 사라졌고 안보를 빌미로 존속되어왔던 억압적인 정치상황도 와해되어간다.단군이 래 민족의 최전성기에 그들은 젊은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세대는 한강의 기적이 낳은 자식들이다.말그대로급속한 경제성장의 역사이며 긍정적인 의미에서든,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정확한 한국자본주의의 반영이다.새로운 세대는 이제 상당한정도로 고도화된 한국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대량소 비사회의 주요 구매자들이다.그러니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광고는 당연하다. 신세대문화란 그들이 먹고,자고,입고,말하고,보고,듣고,느끼고,노래하고,춤추고,술마시고,놀고,사랑하는 모든 방식을 일컫는말이다.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이제껏 한반도에 등장했던 어떤 세대보다 자본주의적이고 소비적이다.그들의 문화는 대 량소비사회가산업화해낸 현란한 소비적 대중문화다.
전세대들은 문화라고 하면 뭔가 특별하고도 고귀한 가치가 있는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에 있어 문화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화도 팔고 사는경제적인 가치로 물질화했다.자본주의는 가장 강 력한 이념이며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자본가들에게 문화는 이제 굉장히 유망한 산업이 됐다.새로운 세대는 아무런 의심없이 문화를 돈을 주고 사서 소비한다.아니 사고 팔고 소비하는 행위 모두가 문화가 됐는지도 모르겠다.신세대문화-.
세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이데올로기는 붕괴되고 테크놀러지는 혁명적으로 발전한다.사람들은 점점 세계를 성찰할 능력을 상실한다.변화가 너무 버겁다.A/V세트와 컴퓨터,위성파와 유선파까지를 겸비한 대량매체,매일 산더미처럼 쏟아져나 오는 정보와복제문화상품들,피와 살로 이뤄진 새로운 시대의 우상인 대중문화의 스타들,그런 첨단의 무기로 무장한 문화산업은 문화가 마땅히수행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반성의 기능을 말살한다.사서 소비하며 즐기라고만 한다.
물론 즐기며 사는 게 행복하다.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세대는 내 눈에 행복해 보인다.그들과 같이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멋진 신세계일까.
나는 좀 걱정이 된다.구세대적인가.
하지만 행복하게만 보이는 세계뒤에는 항상 음모가 있지 않던가.이렇게 의심이 많은 것도 평생을 속고만 살아온 구세대의 속성인가. 아무튼 신세대문화는 아직도 비밀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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