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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당신의 몸에도 다른 피가 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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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5년 화산(花山) 이씨 종친회 대표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난데없는 환대에 혼이 빠질 정도였단다. 도 무오이 당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이들을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서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베트남 국민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 받았다. 열광은 베트남 전역으로 번졌다. 신문마다 대서특필한 기사에는 “끊어진 리(Ly)씨 왕통이 800년 만에 부활했다”는 제목이 달렸다.

사연을 알려면 13세기 초로 가야 한다. 하노이에 도읍해 200년 넘게 이어진 베트남의 리씨 왕조(1010~1226)는 우리로 치면 고구려 같은 의미를 갖는다. 중국인들에겐 안남(安南)이라 불렸지만 스스로 황제를 칭할 만큼 자긍심이 강했다. 중국한테서 독립국가를 지켜낸 첫 왕조인 데다 칭기즈칸이 이끄는 세계 최강 몽골군에게도 굴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수도라는 척신이 마지막 임금 혜종을 폐하고 진씨 왕조를 세운다. 그는 후환을 없애려고 리씨 왕족들을 몰살했다. 왕의 숙부 이용상(李龍祥)이 겨우 화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 그의 배가 닿은 곳이 현재 북한 땅인 황해도 옹진 화산이었다. 고려 고종은 그를 화산군으로 봉하고 화산 이씨라는 성(姓)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나라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

광개토대왕의 직계 후손이 중국 땅 어디에 남아 있다고 밝혀지면 어떻겠나. 대번 난리가 날 터다. 베트남인들이 1400명 남짓한 화산 이씨의 존재에 감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베트남 대사가 새로 부임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화산 이씨 종친회라고 한다. 그렇다고 화산 이씨들이 스스로 베트남 사람이라 여기는 건 아니다. 베트남 왕족의 피가 흐른대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민족이 이 땅에 뿌리 섞여 살아온 예는 화산 이씨뿐만이 아니다. 가야 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김해 허씨), 원나라 제국대장공주를 수행한 위구르 출신 장순룡(덕수 장씨),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여진족 장수 이지란(청해 이씨),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순해 조총 기술을 전한 왜장 김충선(사성(賜姓) 김해 김씨) 등 많은 이방인이 이 땅에 후손을 남겼으며 그들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우리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의외로 많다. 2003년 일본 국립유전자협회의 한국인 DNA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인 고유의 DNA형은 40%에 불과하다. 중국인 형(型)은 22%, 오키나와인 형이 17%에 이른다(『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박기현). 고대로부터 한국과 중국·일본 사이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 상당부분 공통적인 DNA 구조를 갖게 됐다는 얘기다. 국내 연구기관의 분석 또한 다르지 않다.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던 단일민족의 실체다.

며칠 전 “단일민족 이미지에 집착 말라”는 유엔 권고는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순혈(pure blood), 혼혈(mixed bloods) 용어조차 인종적 우월주의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인데 알몸을 보인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가 목청 높이는 순수혈통주의가 백인 앞에선 주눅 들면서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 앞에선 거들먹거리는 비뚤어진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같은 혼혈이라도 백인계가 흑인계보다 대접받는 건 인종차별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국민 8명당 1명이 국제결혼을 하는 시대다. 순혈주의는 용도 폐기될 운명이란 얘기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헝가리 이민 출신이 대통령이 된다. 그의 부인조차 유대계와 스페인계 부모를 가져 프랑스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다. 그래도 그들은 프랑스인이며 프랑스 국민 누구도 그들의 혈통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이미 그것은 현실이 됐다. 단일민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생각은 세계로 향한 도약대 앞에서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