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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에 중동 오일머니 흐르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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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국제경제를 이야기할 때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에는 관심이 많아도 석유수출국의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 해만 보더라도 이들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중국 및 아시아 신흥경제 흑자 총액의 두 배에 가까운 5700억 달러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렇듯 막대하다는 얘기는 결국 석유수출국들의 해외순자산이나 외환보유액, 국제석유자본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말이다.

최근의 국제석유자본 팽창은 더 말할 것도 없이 2002년 이후 고유가와 이에 따른 오일머니(석유수출수입)의 증가에서 주로 비롯된 것이다. 2002년 두바이유 기준 평균 유가가 배럴당 26달러일 당시 3000억 달러 수준이던 산유국들의 석유수출액은 지난해 평균 유가가 배럴당 62달러 가까이 상승함에 따라 약 9700억 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5년간 총 1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석유자본의 급격한 팽창에는 오일머니의 증가뿐 아니라 석유수출국들의 상품 및 서비스 수입 성향이 감소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기간 이들의 석유수출액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29%에서 60%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1990년대에 저유가로 타격을 입었던 석유수출국들이 그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 고유가 기간에는 소비 대신 저축에 신경을 쓰고 있고, 그렇게 모은 자금이 해외투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석유수출국들의 GDP 대비 저축률은 지난 5년간 11%포인트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국내투자의 비중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해외투자를 의미하는 경상수지 흑자의 비중만 올라갔다.

현재의 고유가 기조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석유수출국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오일머니의 규모는 당분간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또한 풍족한 오일머니가 공급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자금이 소비나 국내투자를 위한 수입 대신 해외투자에 쓰이는 비중은 더욱 커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만큼 국제석유자본의 급격한 팽창이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번 국제석유자본의 팽창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거에는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에 예치하거나 또는 우량자산을 사들이는 등 극히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했으나, 이제는 이들이 해외투자를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국제결제은행(BIS)은 국제석유자본의 운용 가운데 미국과 독일 금융시장 및 회원은행의 자료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석유수출국들이 투자 지역을 다변화하거나 역외금융센터의 이용을 늘리고 있고, 또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IIF)의 판단도 유사하다. 지난 5년간 5400억 달러 늘어난 걸프협력회의(GCC) 해외자산 가운데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이 38% 이상을 차지해 채권이나 은행예금 등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에 비해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재투자한 부분을 고려하면, 아시아에만 6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자금이 투자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쿠웨이트투자청(KIA)이 중국공상은행(ICBC) 지분을 대량 매입한 일이나, 우리나라 증시에서 대부분 외국계 투자자들이 매도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아랍 산유국들은 매수세를 유지했던 일도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거에 유가가 오르면 우리는 아랍 산유국들에 대한 상품수출 및 건설수주를 늘리는 일에 집중했었다. 아직도 비중이나 규모 면에서 상당부분의 오일머니가 상품수입을 통해 해외로 환류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랍 산유국들의 해외투자 성향이 강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오일머니 이용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바뀔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미국 국채 등 안정적 달러화 자산을 중심으로 한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는 중국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또 외자공급이 불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는 과거의 산업자금 유치활동과는 다른 새로운 방안이 요구된다. 앞으로는 오일머니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글로벌화에 유용한 금융자본이라는 시각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라는 측면에서 국제석유자본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는 이슬람 금융에의 참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 투자자들은 율법에 의해 인가받은 이슬람 금융상품에 대해 상당히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 규모는 총 4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슬람 금융은 원래 선진국 금융기관들에 의해 개발돼 런던 금융시장 등에서 거래돼 왔으나 최근에는 말레이시아나 바레인 등에서 해당 지역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들 국가는 자국 금융시장을 이슬람 금융허브로 육성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활용해 이슬람 금융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에 유입되는 중동 석유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도 축적 및 이슬람 친화적 이미지 구축을 통해 향후 중동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이슬람 채권'을 발행하고, 내년 중동에서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기를 놓친다면 미래에도 우리 경제의 중동 석유자본 이용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가 된다는 인식 아래, 금융기관 간 정보교환과 공동연구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및 정보수집 등에 대해 금융계와 정부가 상호 협력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송재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