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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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9) 이들의 소식을 묻는 송씨의 마음이 말보다도 앞서간다.
『그래,그 사람이 우리 중달이를 만난 적이라도 있답디까?아니면,소문이라도 뭐 믿을 만한 걸 알고는 있습디까?』 『무슨 놈의 자초지종이 이렇게 중구난방인고,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그나저나 살아는 있다지요?』 『살아 있고 말고.』 『어디서 뭘 하며,입에 풀칠은 면하고 지낸대요?』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을 이렇게도 못 믿나.』 『자식 미더운 부모 있답디까?난 모르고 살었우.이 나이가 되도록 그런 경지는.』 사내녀석이 뜻을 펴겠다고 길을 떠나겠다는데,어미된 마음이 뒤는 못밀어주어도 그렇다고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막을까.나 죽을테니 묻고 가거라 할까.사리가 그렇다고는 해도,그게 그랬다.송씨 눈에는 길이 아닌 길이었고,이제 저 뒷모습을 보내고 나면 내 눈에흙 들어가기 전에는 못 보지 싶은 생이별이 아니었던가.
담배연기를 뱉어내면서 치규가 말했다.
『만주라고 해도 넓은 바닥이니까 싶었는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래도 조선사람은 또 조선사람대로 모여 살게 마련이고 알음알음으로 서로 이웃해서 의지도 하고 그러나 보더군.그 사람이 중달이를 처음 만났던 건 용정에 있는 어떤 학교랍디다 .』 『학교요?그 나이에 무슨 학교?』 『배우는 학동이 아니라,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있더란 얘기요.』 『그 아이가 훈도가 돼요?피는 못 속이는 가 봅니다.영감이 평생 글이나 읽고살더니.』 『조선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인데,듣자하니 그저 야학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디다.거기서 기숙을 하면서 지내는 걸 몇 번 만났는데,자기는 황포군관 학교를 가야겠다는 말을 여러번 하더라는군.그러다가 서너달 전에 모습을 감췄는데,들리는 이야 기로는 군관학교에 간 게 틀림없다는 이야기랍디다.』 『군관학교면?』 『나 또한 뭐 아는 게 있나.워낙 먼 땅이고 게다가 나야산골 무지렁이인데.그 사람 이야기로는 그곳이 일본과 맞서는 군인들을 길러내는 데라 하니,필시 우리 아이가 독립군이 된게 틀림없나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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