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쇼트트랙황태자」 어떻게 지켰나/0.2㎜ 얇은날이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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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근 잇단 부상·부진 딛고 쾌주/절묘한 작전·노련한 경기 “열매”
역시 김기훈(27·조흥은행)이었다.
23일 새벽 전해진 금메달의 낭보는 그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황태자임을 또 다시 입증하는 쾌거였다.
이번의 금메달은 특히 부상과 부진 등 최근 잇따라 겹친 악재속에 이뤄진 것이어서 92알베르빌 올림픽 2관왕의 신화 못잖은 기쁨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지난 한햇동안 김기훈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성적은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로선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93년초 이곳 하마르에서 벌어진 프레올림픽과 두달뒤의 북경 세계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한차례도 우승고지를 밟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경대회에서는 스케이트 날이 휘어지는 바람에 이번 올림픽의 5천m 릴레이 출전티킷을 놓치는 불상사를 빚었다.
그러나 이날 우승의 비밀 역시 두번씩이나 아픔을 안겨준 「스케이트 날」과 막판 스퍼트시 찰나의 틈에 선두자리를 비집고 나서는 노련한 경기운영에 있었다.
단순 스피드에 의한 기록싸움이 아닌 절묘한 작전과 판단이 요구되는 경기의 성격을 최대한 이용한 승리였다. 세계 최초로 오른발 한발로 코너를 빠져나오는 외발타기 주법과,같은 발로 두번 스퍼트하는 독특한 테크닉을 스스로 연마·창안해낼 정도로 기술개발이 뛰어난 김은 또 다시 스케이트 날의 변화로 무서운 기량을 이끌어내는 비법을 터득해냈던 것이다.
일반선수들이 사용하는 스케이트 날 두께는 약 1.2㎜.
그러나 김의 것은 이보다 0.2㎜나 얇은 1㎜에 불과하다.
가늘고 예리한만큼 다른 선수들의 스케이트와 부딪칠때 입는 손상은 치명적으로 지난번 두번씩이나 기록한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빠르고 날렵하게 상대를 순간적으로 제치기 위해선 바로 이 1㎜ 스케이트 날의 도움이 절실했다.
과연 김은 거의 탈락직전의 준결승을 단 0.2㎜차의 스케이트 날에 힘입어 재빠르게 통과하더니 결승에선 한번 차지한 선두는 결코 내주지않는 능숙한 레이스 운영으로 또 다시 세계 제패에 성공한 것이다.
【하마르=유상철특파원】 ○…금메달 낭보가 전해진 23일 새벽 서울 성동구 자양2동 679의 34 김 선수의 집에서는 여동생 지은양(26· 회사원)·남동생 우조군(23·한국체대 4)과 친척 등 6명이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다 환호를 올렸다.
김 선수가 출국한 지난달 21일 이후 매일 철야기도를 해온 어머니 박문숙씨(52)는 이날도 집부근에 있는 「불심정사」에서 불공을 드리다 TV로 경기를 지켜 보았는데 금메달을 따는 순간 잠시 혼절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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