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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7)마을길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한 마리가 짖자 다른 개들도 잠에서 깬듯이 온 마을의 개들이 짖어댔다.어떻게 된 것이 마을에사람 기척은 없고 개만 짖어대는구만.엄동에 살아 있는 건 개밖에 없 어.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치규는 흙담 사이로 난 길을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사랑채에는 불이 켜진 채였다.이 할망구가 자지도 않고 사람을기다렸던가.환한 불빛을 바라보며 치규는 비로소 추위를 느낀다.
얼굴이 뻗뻗하게 얼어 있는 것같아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어흠어흠 헛기침을 하면서 치규는 마당 안으 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누렁이가 나와 꼬리를 친다.
문이 열리며 불빛이 쏟아져나와 마당을 비췄다.불빛을 등지며 송씨가 나와 마루 위에 섰다.치규가 눈 묻은 발을 털며 말했다. 『나요.』 『이제 오세요?』 송씨는 마루 밑으로 내려서며 치규가 내미는 털모자를 받아들었다.
『아니,어쩌다가 이렇게 늦으셨우?』 『어허 할망구라구.새각시도 아니겠고 무슨 청승에 잠도 안 자구 기다리누.』 『야심한데…먼길도 아닌데 늦어지니 걱정이 안 되겠어요.나이든 양반이 어쩌자구…얼어붙은 밤길을 다니고 그러세요.』 안으로 들어온 치규는 방안의 온기에 몸을 떨며 두루마기를 벗었다.
『어허이구,입이 다 얼었구나.땅이란 땅은 그냥 쨍하고 얼어붙었어.추위가 며칠 더 갈 기세야.』 『그러다가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구.무슨 노인이 몸 아낄 줄을 모르시우.나이는 그저고집으로만 다 몰렸는지,원.』 잠시 선 채로 치규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왜요? 무슨 일이 있으셨우?』 송씨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 녀석이 살아 있구려.』 『네? 그게 무슨 말이우?』 『증달이 말이오.그애가 살아 있구려.』 놀란 송씨가 입을 다물지못하며 물었다.
『만주서 왔다는 그 양반이 그럽디까?』 치규는 고개를 끄덕였다.홍씨는 돌아서며 손으로 눈밑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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