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옥사나 바이울,은반요정 꿈꾸는 恨의 결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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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활짝 웃는 커다란 초록빛 두 눈망울에 감춰진 슬픔의 바다.
恨의 결정체 옥사나 바이울(우크라이나)이 94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의 프리마돈나에 도전한다.
1m59㎝.43㎏의 가냘픈 몸매와 이제 만16세에 불과한 앳된 나이에 차디찬 아픈 과거의 상처를 가득 머금은 바이울.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반겨줄 혈육 한점 없건만 바이울은 세상의 사랑을 위해 은반의 요정으로 태어나길 거듭 꿈꾸며 오는 24일(오리지널 프로그램)과 26일(프리스케이팅.이상 한국시간)두차례 링크에 오른다.
지난해초 유럽선수권대회에 혜성같이 등장해 준우승을 차지한뒤 두달뒤 93프라하 세계선수권에선 당당히 정상에 등극,빙판의 신데렐라로 갑작스레 떠오른 바이울.
하지만 챔피언 트로피와 꽃다발 사이로 내민 싱그런 웃음 뒤엔슬픔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고향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어릴적 추억을 안겨주던 할머니가돌아가신 것은 두살때였고 처음 스케이트화를 사주었던(세살때)할아버지도 이내 세상을 하직했다.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마리나를 암이란 악마 때문에 잃은 것이 13세 되던 해로 바이울은 천애의 고아가 되고말았다.
바이울이 두살때 어머니와 헤어진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는 기억의 저편너머로 사라진지 오래.
설상가상으로 다섯살때부터 9년간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쳐주던 스타니슬라프 코리테크마저 어머니사후 1주일만에 생계를 위해 캐나다 오타와로 훌쩍 떠나버렸다.
바이울은 소개장 하나만 가지고 열차로 12시간 거리인 오데사의 갈리나 즈미예프스카야를 찾아갔다.
92알베르빌올림픽 남자싱글 챔피언 빅토르 페트렌코의 스승이자장모인 즈미예프스카야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가족의 정취를 비로소느꼈지만 舊소련 붕괴후 몰아닥친 우크라이나의 경기침체로 바이울은 스케이트 날조차 제대로 갈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 연습에 임했다. 링크의 얼음을 고르는 기계차 잠보니가 고장으로 선지 오래여서 페트렌코와 바이울은 훈련전 반드시 삽질로 빙판을 평탄하게 해야했다.
한번은 즈미예프스카야의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온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유망주가 링크사정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93세계선수권 출전당시도 대회가 임박해서야 페트렌코가 가까스로 마련한 의상을 입고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던 바이울.
혈육과의 이별뒤 찾아온 가난과 이제 또다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하는 바이울은 그러나 웃음만큼은 잃지 않는다.
[릴레함메르(노르웨이)=劉尙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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