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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프리즘] ‘학력 위조’ 부르는 3가지 요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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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3면

대학교수와 배우·종교인 등 유명인사의 허위학력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대학교에 학력 검증 의뢰가 쇄도하고 일부 인사는 자신의 학력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허위학력 사태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거짓말은 묻혀 지나간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이나 의사가 환자에게 치명적 병명을 숨기고 설명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연애시절 나누는 이야기나 제대 후에 늘어놓는 군대 이야기도 대부분 부풀려진 것들이다. 성적(性的) 만족도에 대해 배우자에게 속삭이는 말도 거짓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는 거짓말을 일일이 밝혀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에 피해를 주거나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거짓말은 유대감과 친근감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학력위조의 거짓말은 그렇지 않다. 배신감과 불신 풍조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거짓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이 선생님께 또는 피의자가 형사에게 하는 거짓말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인데 유명인의 학력 거짓말도 이런 부류다. 이득은 사기꾼이 감언이설로 얻는 금전 같은 유형적 이익을 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무형적인 이익도 포함된다. 거짓 학력은 유명인사들이 현재의 명성과 위치에 도달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무형의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학력을 속이지는 않았지만 체면이나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잘못 알려진 학력에 침묵을 지킨 것도 거짓말이기는 마찬가지다.

무엇이 저명인사들을 거짓말하게 만드나? 개인의 성격적 특징일까? 아니면 사회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일까?

사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기는 하다. 우선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에 탁월하게 부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일종의 사회적 카멜레온 같은 기질이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적 성격도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들은 사회의 도덕률보다는 현실 지배원리를 중시한다.

그렇다고 학력위조의 거짓말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학력 지상주의와 체면중시 문화가 있다. 능력이 뛰어나도 ‘가방끈이 짧으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듯한 학력을 내세우면 보는 눈과 대우가 달라진다.

미인선발대회에서도 유명 대학 출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스포츠계에서도 ‘고졸 신인’이 강조되는 등 은연중에 학력이 부각된다. 대기업의 중역, 국회의원, 기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안정된 위치에 올라 있는 사람들도 일류대학의 특별과정에 등록한다. 사회적 체면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학력에 관한 거짓말을 부추기는 진짜 이유다.

유명인의 학력 거짓말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검증 시스템의 부재다. 교수 채용 시 외국 대학은 제출된 이력서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경우가 거의 없다. 추천서를 쓴 복수의 관계인에게 직접 확인한다. 다른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경찰관이나 정보를 취급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채용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거친다. 이력서에 적어낸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민간 기업 등 사적 영역에서도 1970년대 후반까지 직원을 채용할 때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했으나 인권침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어 없어졌다. 거짓말탐지기 등 검증 시스템을 사용하면 허위이력 등 거짓말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각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도 공적 영역에서라도 거짓말탐지기 등을 포함한 검증 시스템의 도입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을 보완하고 인식 전환이 병행할 때 ‘거짓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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