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10월 2~4일로 연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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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01면

평양시민들이 11일 폭우로 침수된 평양시 보통강 구역 붉은 거리를 지나고 있다. 보통강호텔과 능라도 경기장 등 평양 일부 저지대가 7일부터 11일까지 내린 524mm의 폭우로 침수피해를 당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8~30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2~4일로 연기됐다.

北 "수해 복구 위해 날짜 미뤄달라" … 실무접촉 결과는 변동 없어

북측은 18일 오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최근 발생한 수해 복구가 시급한 점을 고려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10월초로 연기하되 날짜는 남측이 편리한 대로 정할 것을 제의했다. 남측은 이에 대해 오후 2시 남북 정상회담 추진위를 열어 10월 2∼4일 회담을 개최하자고 북측에 통보했으며,북측은 전통문을 통해 이를 수용한다고 전해 왔다.

북측은 전통문에서 “그동안 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북한 대부분 지역에 연일 폭우가 내려 많은 피해를 봐 수해를 복구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북측은 이어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측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실무 준비접촉 결과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남북 정상회담이 연기된 배경에 북한 수해가 아닌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왜 연기했나=회담 연기는 북한이 밝힌 수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7~11일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대동강 중상류에 내린 524㎜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재민 8만8000여 가구 30여만 명이 발생하고, 농경지 11% 이상이 침수됐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설명이다.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을 수해 복구에 동원해 놓고 축제의 장일 수 있는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북한 지도부에 부담일 수 있다. 수마가 덮친 평양 시내를 외부 세계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해가 육로 방문길인 개성~평양에 집중된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도로가 유실되면서 복구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전언들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정상회담은 지도자의 리더십을 국민에게 보여 주는 행사”라며 “주민들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회담을 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요인은=수해 외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일각에선 남북 간 이면 합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남북 간 사전 물밑 합의가 틀어지면서 북한이 압박을 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이유라면 10월의 정상회담은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작다.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두 번 회담을 연기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연기 일자에 복선 없나=문제는 연기 날짜다. 북한의 10월 회담 제안은 여러 가지를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완전한 수해 복구다. 복구 시간과 주민의 사기를 고려해 멀찍이 날짜를 잡았을 수 있다. 9월 25일 추석 전후 연휴도 고려했을 수 있다.

둘째는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다. 정상회담이 그 직전으로 잡힌 만큼 통일 문제나 남북 경협 등과 관련한 합의 사항을 김정일 체제 선전에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남측은 이미 북측에 대규모 경제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다.

셋째는 남한의 정치 일정이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긴급 현안이 없는 점에 비춰 보면 극히 이례적이다. 남한의 대선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 회담은 범여권 국민 경선(9월 15일~10월 14일)의 막바지에 열린다. 남북관계에 깊숙이 개입해온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이 한나라당 경선 하루 직전 회담 연기를 통보한 것도 주목거리다. 북한이 올 3개지 공동사설에서 남한에서 보수정권 탄생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합의 사항 논란 일 듯=정상 간 합의 사항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합의 사항을 실천할 노 대통령의 임기가 사실상 12월 대선과 더불어 끝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감한 통일문제나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한 합의가 나오면 정국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남북 경제협력 사업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정상회담 후의 대선 정국은 이 합의 사항이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대선은 보ㆍ혁 구도로 흘러갈 수 있다. 정치권에서 노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포기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회담 연기는 비핵화나 북ㆍ미 관계 개선 문제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 북한이 이번 회담을 북ㆍ미 정상회담의 발판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지만 부시 미 행정부의 임기는 1년여가 남아 있다. 다만 노 대통령 임기 중 남북·미ㆍ중의 4자 정상회담 개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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