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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 들고 돌아온 ‘ 천재 투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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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6면

릭 엔키엘이 10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와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서 3점 홈런을 친 뒤 홈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AP=연합뉴스]

행크 애런의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755개) 기록을 경신한 배리 본즈가 스테로이드 파문으로 인해 찬사와 야유를 동시에 받는 2007년 여름. 단 세 개의 홈런을 때려낸 타자가 메이저리그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릭 엔키엘(28ㆍ세인트루이스). 안타깝게 마운드를 떠난 젊은 투수가 방망이를 들고 빅리그에 복귀했다. 그의 뜨거운 타구는 팬들의 가슴속에 선명한 궤적을 그렸다.
세인트루이스의 릭 엔키엘

미 스포츠사이트 ESPN은 엔키엘의 복귀를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한 영화 ‘내추럴’에 비유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등 멋지게 활약하던 천재 투수 로이 홉스가 불의의 총격 사고로 마운드를 떠난다. 그러나 그는 외야수 겸 타자로 돌아와 팀을 승리로 이끄는 홈런을 친다. 라이트를 깨뜨리는 대형 홈런을 친 뒤 천천히 베이스를 돌아 홈인하는 느린 장면에서 엔키엘을 떠올리게 된다.

엔키엘은 1999년 만 스무 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이듬해 11승7패, 평균자책점 3.50의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그는 박찬호와 함께 21세기를 대표할 메이저리거로 손꼽혔다. 그러나 2000년에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투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그를 덮친다. 그해 애틀랜타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출전한 엔키엘은 한 이닝 5개의 폭투와 볼넷을 남발하며 무너졌다.

아버지 투옥이 몰고온 충격

엔키엘이 스물한 살이 된 2000년. 그의 부모는 4년간의 다툼 끝에 이혼했다. 더구나 전과 20범인 엔키엘의 아버지 리처드는 마약 소지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엔키엘을 어릴 때부터 야구 기계처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고 한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면서 엔키엘은 야구 엘리트로 컸다. 그런데 가정과 코치를 모두 잃었다.

어려움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왼손투수는 장래를 보장받은 듯했다. 그러나 한 번 큰 위기에 빠지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엔키엘이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기록한 5개의 폭투는 메이저리그 한 경기 최다 기록이다. 이 어려운 시간 동안 그는 혹독한 야구 코치이자 파트너였던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타자 전업 뒤 찾아온 부상

그러나 만약 엔키엘이 이렇게 사라졌다면, 그리고 별 노력 없이 복귀해서 홈런을 때려냈다면 그의 홈런은 그저 포지션을 바꾼 천재 선수의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이후 계속해서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던 엔키엘은 2005년 스프링캠프에서 토니 라루사 감독을 찾아간다. 그리고 선언했다. “투수로선 끝입니다. 타자를 할 겁니다. 되든 안 되든….”

방망이를 들고 2년을 보냈다. 타자로 새출발할 무렵 또 다른 암초를 만난다. 무릎 부상. 2006년은 부상 치료와 재활에 바쳐야 했다. 모두가 그를 잊었고, 라루사 감독 또한 “도대체 왜 투수를 할 수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엔키엘에게 내 감정이 좋을 리 있겠느냐”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홈런 3방에 미국이 감동

세인트루이스의 트리플A팀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엔 낙관과 비관이 뒤섞였다. “너무 많은 삼진을 당하고 너무 의욕적”이라는 지적과 “장거리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는 칭찬. 엔키엘은 트리플A에서 32개의 홈런을 친 뒤 빅리그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3년 만에 복귀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8월 10일 샌디에이고와의 경기. 엔키엘은 홈런을 쳤다. 12일 LA 다저스전에서는 홈런 두 방. 백전노장 라루사 감독은 엔키엘의 활약에 대해 “내가 이 팀을 맡은 이후 가장 행복한 장면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시련을 딛고 일어선 영웅을 사랑한다. 팬들도 행복할 것이다. 엔키엘은 현실 속의 ‘내추럴’이다.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플러스’는 필자인 이태일 네이버 스포츠팀장의 휴가로 한 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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