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종양과 맞선 제2의 격투 인생을 시작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호 15면

최홍만에게는 엔터테이너 기질이 있다. 재능도 대단하다. 지난해 12월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는 여가수와 함께 등장해 랩 송을 부르고 춤도 췄다. 언젠가는 연예계에 진출할 생각도 있다. [중앙포토]

팬들과 즐기는 거인

최홍만은 3월 요코하마 대회에서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 한 방에 캔버스에 누웠다. K-1 진출 뒤 첫 KO패였다.[중앙포토]

오랜만의 악수.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아무리 거친 싸움을 하고 혹독한 훈련을 해도 해지는 것은 글러브뿐이다.

그의 맨손은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받고 노트북과 씨름하느라 바쁘다. 솥뚜껑만 한 손이 좁은 자판 위를 넘나드는 장면은 경이롭다.

최홍만의 손재주는 섬세한 곳에서 빛난다. 직접 운영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2000만여 명 이용자 중 가장 많은 10만여 명의 일촌을 거느리고 있다. 연예인 친구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몰려드는 일촌 신청은 대부분 수락한다. 서너 번씩 클릭해야 겨우 일촌 1명을 얻지만 팬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최홍만은 “최근 몇 달간 일촌 수락을 미뤘더니 대기자가 3만쯤 되더라”며 웃었다. 미니홈피에는 최홍만이 포토샵을 이용해 직접 만든 캐릭터와 팬이 올린 영상이 가득하다.

최홍만은 “방명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결투 신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만나자는 장소는 대부분 ○○초등학교”라며 낄낄 웃는다.

K-1에서 최홍만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무섭고, 동시에 귀엽다.

파이터와 엔터테이너 기질을 겸비한 최홍만은 밥 샙 이후 최고의 상품성을 가졌다. 덕분에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만 광고 6건을 촬영했다. 파이트머니보다 광고와 이벤트 출연으로 얻는 수입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속씨름 시절부터 테크노댄스로 유명했던 최홍만은 2005년 K-1 월드그랑프리 서울대회에서 데뷔하자마자 우승했다. 세리머니로 마이클 잭슨 춤을 추고는 관중을 향해“배고파요. 밥 사주세요”라고 외쳤다.

최홍만은 지난해 12월 다이너마이트 대회 때 여가수와 함께 등장해 랩송을 불렀다. K-1과 경쟁관계인 프라이드 측에서도 깜짝 놀랐다. 쇼적인 측면이 강한 프로레슬링이 아닌 실전 격투대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벤트였다.

최홍만은 K-1 파이터 중 가장 큰 체구(2m18㎝·160㎏)를 갖췄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막내동생 취급을 받는다. 무사시·후지모토 유스케 등 오사카 정도회관에서 함께 훈련하는 일본 선수들은 최홍만과 싸우기 꺼려도 그와 어울리기는 좋아한다.

지난 5일 홍콩대회에서 최홍만에게 1라운드 실신 KO패를 당했던 게리 굿리지(41)도 마찬가지. 그는 최홍만이 K-1에 데뷔했을 때부터 선글라스와 티셔츠 등을 선물하며 호감을 보여왔다. 먹던 빵을 나눠주기도 했다. 최홍만은 “사실 굿리지와의 경기가 편치 않았다. 빨리 끝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경기 후 굿리지의 여동생 수지가 최홍만을 위해 접시 한 가득 음식을 담아왔다고 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K-1에서 최홍만은 거대한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건강 이상설’과 싸우는 야수

올해 최홍만은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3월 요코하마 대회에서 마이티 모(34·미국)의 라이트훅 한 방에 캔버스에 드러눕더니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앞두고는 메디컬 테스트에서 실격됐다. 머리 속에서 지름 2㎝ 정도의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최홍만이 8월 홍콩 대회에서 굿리지를 꺾은 뒤에도 ‘건강 이상설’은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뇌종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최홍만은 “씨름할 때부터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양은 5년 전 성장을 멈췄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홍만은 미국 세인트 존스 스파인 인스티튜트의 로버트 브레이 박사로부터 “종양 외벽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현재 말단비대증이 진행 중인 것도 아니다”라는 소견을 받아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는 끝내 최홍만의 로스앤젤레스 대회 출전을 불허했다. 알만도 가르시아 위원장은 지난 8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과의 인터뷰에서 “최홍만이 수술을 받지 않고 계속 경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종양이 성장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그렇다면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의 우려대로 말단비대증(팔·다리 등 몸 끝부분이 계속 자라는 증세)이 진행될 수 있다. 최홍만과 K-1 주최사 FEG는 “장래를 위해 치료는 받을 생각이다. 그러나 당장 문제는 없다”고 맞섰다.

진실 공방의 결론과 관계없이 최홍만은 큰 상처를 입었다. 화려한 이미지에 괴물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다. 최홍만은 “믿을 만한 의료진의 소견에 따르고 있다. 나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를 곧 죽을 사람처럼 만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해도 내 건강을 해치면서 싸우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이럴 땐 많은 관심도 부담이다. 최홍만은 “몇 분마다 한 번씩 전화가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다가 나도 지쳤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홍만은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할 때 훈련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최홍만은 모와의 경기 이전에 판정으로 진 경우가 두 차례 있었지만 KO를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K-1 입문 이후 처음 겪는 수모였고 잇따라 시련이 닥쳤다.

하지만 최홍만은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시련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최홍만은 “지금까지는 멋모르고 재미있게만 싸웠다. 이제부터 제2의 격투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질 수는 없다”며 다시 웃었다.

최홍만의 머리 속에는 지름 2㎝ 정도의 종양이 있다. 최홍만은 10년 전, K-1 측은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체육위원회가 이를 문제 삼으면서 일반에 공개됐다. 로버트 브레이 박사와 일본 의학계에서는 이를 양성종양으로 본다. 양성종양은 주위의 정상조직을 해치며 발육하지 않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체육위원회의 알만도 가르시아 위원장은 이 종양이 악성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홍만은 13일 국내에서 MRI 판독과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악성종양이라면 진작 당뇨병에 걸리고 심장에 문제가 왔어야 했다”며 가르시아 위원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