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유고」 소동(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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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가벼운 골절상을 입었다. 이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 조금씩 부풀려지더니 며칠후에는 그 사람이 죽었다더라는 말로까지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일테지만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가까운 사람이거나 주요 인물인 경우에는 과장의 폭도 더욱 커지고,전파되는 속도도 더욱 빠르게 마련이다.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려있는 탓이다.
86년 11월의 김일성 사망설이 좋은 예에 속한다. 80년대 들어선 이래 권력투쟁에 휘말린 북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느니,쿠데타가 발생했다느니 하는 온갖 「설」들이 잇따랐고,그 「설」들이 차츰차츰 「사실」에 근접해 가더니 마침내 「김일성 사망」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때의 일도 처음에는 북경에 다녀온 한 일본정부 요인이 그곳에서 『김이 총격당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범인들은 중공으로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북한 전문가에게 흘린데서 발단됐다.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로 꾸며졌고,북한이 이를 심리전술로 역이용한 것이다.
이번의 「김정일 유고설」도 비슷한 낌새가 있다. 그는 근본부터가 엉뚱한 인물이다. 그가 만들어낸 자신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거의 모두가 신화를 방불케 한다. 『1942년 2월 어느날 한 백발노인이 백두산을 오르던중 갑자기 제비 한마리가 내려와 그달 16일 온세계를 지배할 비범한 장군이 탄생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바로 그날 찬란한 광채와 쌍무지개가 어우러진 가운데 아기 김정일이 태어났다』느니,『45년 어느날 세살의 신동 김정일이 세계지도를 보고 일본 땅에 먹칠을 하는 순간 일본 전역에 먹구름이 뒤덮이고 억수갚은 비가 쏟아졌다』는 식이다.
그렇게 보면 86년 김일성의 경우처럼 자신의 「유고설」을 슬쩍 흘려놓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언론들의 보도를 보고 들으면서 내심 『용용 죽겠지』 미소를 띠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야당 지도까지 한몫 거들고 있으니 만약 김정일의 장난이라면 기대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흐뭇해할 것이다. 낮도깨비같은 장난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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