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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위조 사건 쉬쉬하는 방송국의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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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우 윤석화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한 사실이 없다고 고백한 다음 방송가에서 이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윤씨의 허위 학력에 대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방송계 인사들이 예상보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대 출신의 여론 주도층들은 윤씨의 학력 위조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이 사실이 벌써부터 방송가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윤씨를 출연시킨 적이 있다는 한국방송(KBS)의 한 PD는 “윤씨가 동문이라는 얘기를 들어 방송을 마친 다음 모교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한사코 피하는 눈치가 역력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윤씨 또래 동문들에게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학력이 허위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윤씨의 학력에 의문을 품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면, 왜 이 사실은 진작 밝혀지지 않았을까? 만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를 필두로 잇단 학력 위조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이 사실은 영영 묻혀버리진 않았을까?

허위 학력이 밝혀진 인물들이 집중된 분야는 문화예술계와 방송가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그리고 연극배우 윤석화씨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인기 영어강사이자 방송 진행자이던 이지영씨에 이어 MBC ‘9시 뉴스’(‘뉴스데스크’의 전신) 앵커였던 정경수씨의 허위 학력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씨와 달리 정씨는 10여년 전 MBC 내에서 이 사안이 문제가 돼 사퇴했다. 그런데도 지금에야 그 사실이 공개됐다.

정씨는 당시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해옴에 따라 회사 측이 면밀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인사는 “당사자가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결국 최종 학력이 고졸이라는 사실을 자인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안을 치부로 여긴 방송국에서는 이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방송국들이 인기 진행자나 출연자의 허위 학력 문제를 공개하는 것을 얼마나 꺼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7년여 전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경제평론가 황인태씨의 허위 학력도, 신정아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불거졌다.

방송국들이 허위 학력 사건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 우선 방송을 많이 탄 진행자나 출연자의 가짜 학력이 공론화될 경우 방송사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도 간판 뉴스 프로를 진행한 경력 때문에 발설을 꺼리고 쉬쉬했던 흔적이 강하다.

정경수씨가 허위 학력 논란으로 사퇴할 당시 왜 그 문제가 공론화 되지 않았는지 MBC 관계자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국에 득 될 일도 아니었고, 당시 정씨만 해도 수많은 팬과 인맥을 거느린 일종의 권력이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외부에 공개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방송국의 보신주의와 나태가 방송가의 허위 학력 논란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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