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미 매파 제동 위기설 완화/한 외무 미서 대화해결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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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재 가하면 성과보다 긴장만 조성/형같은 아량으로 달래야 효과있다”
설을 앞두고 급거 방미한 한승주 외무장관은 이틀동안 미 고위인사들과의 연쇄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세일즈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 계속 고집을 부릴 경우 유엔안보리로 회부와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미국내와 국제사회의 여론속에 끝까지 대화를 통한 해결을 호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어 부통령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국무,페리 국방,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과 만나 한 외무는 이같은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대화를 통한 해결원칙의 세일즈는 크리스토퍼 장관과의 회담후 내외신 기자회견과 하타 일본 외상과의 12일 회담에서도 이어졌다.
그가 급거 미국을 방문해 이같은 대화 세일즈를 하는 것은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분위기가 엷어지면서 미국내에서 강경파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것이 한반도 위기설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그의 노력은 유엔에 북한 핵문제가 넘겨져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여러단계를 거쳐 제재결의가 나기까지도 대화해야 한다는 한미간의 합의를 끌어냄으로써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또 미국의 조야에 대북 강경책을 원치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을 전달함으로써 미국내 강경파들의 소리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두었다.
「대화의 사자」로서의 이같은 한 외무의 역할은 미국의 무기배치 등 한반도 위기설로 불안해하는 한국에 상당한 심리적 안정을 주고 있다.
그의 이 역할이 가능한 것은 우선 그동안 강온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우리 정부의 정책이 한반도 위기설이 대두되며 대화쪽으로 가닥을 잡은데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미국이 북한과의 2단계 고위회담에서 핵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에 경수로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합의해 주었을 때와 미국이 북한과의 「포괄적 협상」 방향으로 온건정책을 추구하려 했을 때는 미국의 다리를 잡는듯한 강경책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최근 핵해결시한이 임박하며 미국에서 고개를 든 대북 강경론은 이같은 강경론을 더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같은 방향으로 한국이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미국도 이에 도의하게 된 배경에는 한 외무의 뚜렷한 대북한관과 핵문제를 보는 시각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에 대해 한국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철학을 그는 갖고 있다. 그는 북한을 「불구대천의 적으로라기 보다는 변덕스럽고,때로는 예측불가능하며,폭력적이면서도 오랜 친척같은」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북한을 「형같은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논리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그의 입장은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언젠가 북한이 갖고 있는 합리적인 측면이 나오길 기대하며 어렵지만 끈질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강경책은 말하기는 쉽지만 일단 결행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반면 대화는 어렵지만 손해가 없고 언제든 강경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북제재론이 고개를 들때면 『대북제재조치에 들어가면 다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어려워질뿐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한반도의 긴장만 조성된다』는 반론을 편다.
『왜 당근만 보고 채찍은 보지 않느냐』는 지적에 『제재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컨센서스가 필요하고 여기엔 모든 가능한한 대화가 소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 장관이 그동안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세운 원칙은 ▲어떤 경우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어서는 안되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과 설득으로 해결을 모색하고 ▲이 노력이 실패할 경우 국제기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협력·동참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의 배경에는 미국은 핵확산 방지에 더 관심이 있는 반면 우리는 핵문제 해결후 남북관계에 더 관심이 큰 한미간의 미묘한 입장을 포용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겉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위기론이 계속되면 국내외의 대한 투자마인드가 위축되어 막 생기를 찾고 있는 경제가 움츠러들고 강경책이 자칫 북한의 보복을 불러일으키면 경제적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을 위협하기 보다는 달래고 유인하는 식의 차분한 대응으로 요약되는 한 장관의 이같은 전략과 논리는 미국을 설득시켜 한반도에서의 극한 상황론을 배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화노력이 성공할지 여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북한이 대화를 통한 해결에 호응해올 경우 대화론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나 끝내 거부한다면 대화론의 입지는 좁아지게 된다.
미국내 일부뿐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북한을 강공으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오랫동안 뿌리내린 논리와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장관이 미국 관리들과 「대화를 통한 해결원칙」을 확인하는 사이 미일 정상이 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거론한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한 장관과 한국정부가 미국 고위당국자들과의 회담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워싱턴=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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