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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걸으며 발가락 까부는 소리에 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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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발은 체중을 유지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도구’라고 했다.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 ‘마사이워킹’과 ‘발 지압’이 유행하고 있다. 운동효과 뿐 아니라 의학적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마사이족의 보행은 맨발로 부드러운 초원을 걷는 게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흙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설령 흙길을 만났다고 해도 혼자 신발을 벗고 걸을 용기가 없다.
그렇다면? 최근 ‘숲길 맨발걷기’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 중,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대전 계족산에서 열리는 맨발걷기 모임은 걷기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가족과 함께 하기 좋은 ‘계족산 황톳길 맨발걷기’

계족산 맨발걷기 코스는 산기슭의 장동산림휴양지에서 1㎞정도 올라온 곳부터 시작한다. 산 입구에서 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잘 다져진 황톳길이 나타난다.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신발을 벗어 주섬주섬 가방에 넣기 시작한다. ‘숲속에서 맨발걷기’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본격적인 맨발 코스가 시작된다.
대전의 향토기업인 (주)선양 조웅래(49)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모임은 이제 ‘맨발걷기 캠페인’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업차 만나는 사람들과도 골프장 대신 이곳을 걸으면서 나만의 사교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공기 좋은 숲길에서 맨발로 걷다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샘솟아서 말 그대로 에코힐링(eco-healing)을 체험하게 되죠.” 조 회장의 맨발걷기 예찬론이다. 사내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맨발걷기로 흘러 매달 행사가 시작되기 2주 전부터 (주)선양의 자원봉사단 직원들은 계족산 산림도로 흙길을 정비하느라 분주하다. 마사이워킹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황토와 마사토를 적절한 비율로 구성한 흙길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난생 처음 걸어보는 맨발길인데도 발바닥 느낌이 좋다. 어제 내린 비로 차진 황토가 발에 착착 감기는 기분 또한 시원하고, 훨씬 짙어진 소나무향이 흙내음과 섞여 코끝을 자극하는 느낌도 신선하다. 입자가 고운 황톳길은 어린아이가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걸음마를 막 뗀 아기의 발자국도 쏘옥 새겨질 만큼 흙 상태가 말랑말랑해서 가족이 함께 걷기에 손색없다.

바람소리, 음악소리…생동하는 심장 소리

완만하게 경사진 오르막을 20분쯤 걸었을까? 잔모래가 깔린 평지가 나타난다. 오늘의 본 코스인 산림소방도로다.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잔모래길로 한걸음 대딛을 때마다 발바닥이 여간 간지러운 게 아니다. 발은 바닷가 백사장을 걷는 느낌인데, 주변에서는 이름 모를 산새소리가 들린다. 묘하다. 10여 분을 더 걸으니 다시 자갈이 섞인 굵은 모래와 딱딱한 흙길이다. 발을 자극시켜 지압효과를 높이기 위해 조성된 코스다. 길 중간에는 작은 옹달샘이 있다. 발 지압을 하며 걷느라 어느새 불긋불긋해진 발바닥에 시원한 물을 끼얹고, 목도 살짝 축이고 나니 다시 걸을 힘이 솟는다.
오후 3시쯤 출발해서 2시간 남짓 맨발로 걸었나보다. 산에서는 해가 금방 저문다. 잰걸음으로 내려오니 삼림욕장에서는 국악공연이 한창이다. 온가족이 맨발로 둘러앉아 발가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통과시키며 대금과 거문고 소리를 즐기다보니 무더위 속 맨발걷기의 피로가 금세 사라진다. 1시간 정도 진행된 공연이 끝난 후, 산 아래 약수터로 내려와 흙을 씻어내고 신발을 신으니 한동안 발바닥이 간질거린다. 제2의 심장이라 불리는 발이 오늘하루 충분히 자극받아서 신나게 펌프질을 시작한 것 같다. 창백했던 발에 어느새 선홍빛 혈색이 돈다.
오늘의 전체 걷기코스는 왕복 13㎞였다. 개인의 걷는 속도와 능력에 따라 코스는 늘이거나 줄일 수 있다. 아침과 저녁 무렵은 숲속의 피톤치드(숲의 공기를 정화하고 사람의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식물의 항균물질)가 활발하게 뿜어지는 때라 걷기에 더 좋다고 한다. 계족산 맨발걷기 행사는 혹한기인 12월에는 열리지 않는다.

박혜민 인턴기자 hyeumi@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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