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6개월 무엇이 달라졌나-금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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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융실명제 시행 반년이 지난 금융시장은 초기의 혼란과 격동에서 벗어나 지표상으로는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안정」된 外觀의 뒷면에서는 실명제로 과연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그 의문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실명제 이후 그만큼 돈이 많이 풀렸으니 금리가 안정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는 시각이다.
오히려 금융시장의 「안정」에 지나치게 신경쓴 나머지 최근의 주가 폭등 현상이 빚어졌으며,그러고도 부도율이 올라가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는 여전히 남아있는 借名.盜名 문제다.
이제 거의 모든 금융거래가 假名이 아닌 實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식.예금등 借名 금융자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여전히 그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명제 시행 초기 두달간의 총통화()증가율이 20%를 넘도록돈을 쏟아 부은 덕에 시중의 돈은 풍성했는데 자금 수요는 많지않은데다 때마침 11월의 2단계 금리자유화까지 겹쳐 금리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자금이 부동산등 實物로 옮겨갈 여지를 꽁꽁 묶어놓은 탓에 갈곳 없는 돈은 다시 금융기관에 몰려드는데 반해 돈을 쓰자는 신용 좋은 기업은 없어 금융기관 마다 대출 세일에 나서는 한편 財테크에 열을 올렸다.
주가가 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주식매매 차익에 대한 과세유보라는 「도피구」를 뚫어 놓은 데다가 이같은 금융기관의 주식투자열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소.영세기업에는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지난해 어음부도율은 12년만에 가장 높은 0.13%를 기록했다.
또 실명제로 풀린 돈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이 정상 속도로 돌기 시작하면서 금리하락.주가상승.물가불안등의 연쇄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기업 부도도 아직은 계속되고 있다. 풀려있는 「실명 자금」을 善순환으로 돌리는 일이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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