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액션억제 점잖은 갱영화 칼리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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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브라이언 드 팔마가 최근 3~4년간 만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팬들을 실망시켰다.『전쟁의 희생자』『허영의 불꽃』『케인의 두 얼굴』등 그의 최근작들은 일관된 비전이란 전혀 없이 좌충우돌하는듯한 인상을 주어 그가 작가로서 이제 할말이 하 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70년대에 화려한 테크닉으로 젊은 감독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물의 하나였던 그는 이제는 과거의 인물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작『칼리토』에서 그는 보다 자신있는 장르인 갱영화로 복귀한다.전에도 금주령시대의 시카고갱들을 그린『언터처블』로 부진에서벗어났던 것처럼 그에게 갱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의 원점인 것이다.그러나 70년대 중반의 뉴욕을 무대로 한 이 갱영화는 그의 예전작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어딘지 낯설다는 느낌을 준다.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그의 영화치고는 놀랄만큼 점잖다.쓸데없는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 때때로 영화의 구성조차 망쳐버리곤 했던그는 이 영화에서는 드물게 화려한 총격전도,그에 수반되게 마련인 영웅주의적인 액션도 쓰지 않는다.
뒷골목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칼리토(알 파치노)란 인물의 파란에 찬 삶을 지극히 정공법적으로 그려 나간다.
영화의 타이틀에서부터 연인과 함께 바하마로 이주해 평화롭게 살려던 칼리토의 꿈이 깨어짐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관심을 왜 칼리토의 갱생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가로 유도한다.칼리토가 적들을 물리치고 도주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로 억지 서스펜스를 만들지는 않겠다는 감독의 자세는 점수를 줄만하다.
감옥에서 나온후 클럽을 운영하면서 돈을 모아 바하마로 떠나겠다는 칼리토의 희망은 거의 성공직전까지 가지만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유태인 변호사 클라인펠드(숀 펜)가 의외의 장애물로등장한다.
돈을 모아 뒷골목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한 인간의 노력이무참히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을다뤘다고 할만한 이 영화는 그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군데에서 한계를 드러낸다.우선 영화는 범죄 멜러드라 마의 공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따라서 결말의 페이소스는 다분히 상투적인 것으로 떨어진다.게다가 때때로 그는 왕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스피디한 이동촬영으로 영화의 톤을 졸지에 액션물로 바꿔버리기도 한다.그러나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의 경력에 있어 중요한 전기가 될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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