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북핵… 위기설 잠재우기/안보장관회의·한 외무 방미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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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미 「카드」 다써… 대안없어 고심/“압박만으론 안돼” 미 신중 촉구
김영삼대통령이 올들어 처음으로 8일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하고 한승주 외무장관이 예정을 1주일 앞당겨 9일 미국을 방문키로 한 것은 북한 핵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한반도 위기설이 고개를 드는 등 중요한 시점에서 정부전략을 재검토하고,한미간의 최종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21일 열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이사회 이전까지 북한이 IAEA 사찰을 수용하지 않아 핵문제가 유엔안보리로 넘어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등 한반도 안보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김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밝혔듯이 지난해 11월 미국측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여러 합의도 했지만 IAEA 이사회가 2주일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의도가 뭔지를 따져 볼 필요도 있었다.
정부는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한미 양국의 입장이나 원칙에는 전혀 변함이 없으며,한미간의 공조체제도 이상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핵사찰 문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풀려나가지 않고,미국정부내에서는 강경분위기가 점차 거세지고 있음을 유의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태에서 안보태세를 점검,국민들에게 북한 핵문제가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솔직히 알려주고 또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볼 필요를 느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IAEA 이사회가 2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북한의 여러 상황이 아직 변하지 않고 있으며,미국에서 일부 사실이 아닌 지나친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러한 대단히 중요한 시점을 맞아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한반도 평화를 지킬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판단해 안보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이 한 장관을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미국에 급파키로 한 것도 미국의 요청도 있었지만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을 천명한 것과 동시에 미국에서 빈번히 불거져 나오고 있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 언론들은 「주한미군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팀스피리트훈련 강행준비」 「미정보지원단 한국파견」 등 북한을 자극하는 내용을 잇따라 보도해왔는데 이들중 상당수는 미정부내 강경파들이 흘린 것으로 우리 정부는 보고 있다.
때문에 한 장관은 이번 방미기간중 미국 수뇌들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논의하며 강경대응의 경우 한반도의 위기와 그 파장을 설명하고 한편으로는 특히 강경파들에 의한 불필요한 정보유출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 북한이 IAEA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에 IAEA와 극적인 합의를 해 사찰팀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점차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장관이 미국방문을 1주일 앞당긴 것은 이처럼 상황의 긴박함 때문이다.
이날 안보장관회의는 평화적인 해결원칙을 다시 강조하고,핵문제가 유엔안보리로 넘어갔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국제공조체제 구축 등 전략을 다각도로 검토했으나 어떤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북한 핵문제 해결의 최종 시한이라 할 수 있는 21일까지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더 기다려 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선택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핵문제가 유엔으로 넘어간다해도 당장 대북제재가 이뤄지거나 돌발사태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 유엔무대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시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 북한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지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 안보관계장관 회의에서 전쟁대비책도 논의한게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도 있으나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현재 전쟁대비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전쟁억지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밝혀 이번 회의가 전쟁대비책 마련과는 무관한 것임을 시사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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