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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회전 매듭” 쫓기는 검찰/전모 못밝히고만 「돈봉투 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물증확보 않은 소환조사로 삐꺽/관련 의원별 검사 붙여놓고도 내사 미뤄
국회의원들의 수뢰의혹이 제기됐던 노동위 돈봉투사건 수사가 한국자보의 김택기사장 한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돼 국민의 의혹만 부풀린채 「태산명동서일필」격이 되고 말았다.
검찰은 이제 임시국회 개회일인 15일 이전까지 의원들이 결백하다고 밝히든가,아니면 국회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수사체제에 들어가든가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됐다.
검찰은 5일 동부그룹 최고경영자는 물론 한국자보 경영진을 전격 소환조사했으나 『수뢰혐의 수사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사결과는 물론 실명제 실시에 따른 금융비밀 보호때문에 의원들의 예금계좌 추적이 종전처럼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물증보다 한국자보측의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라는게 지배적인 의견.
결국 충분한 내사를 통한 증거수집 과정을 생략한채 수사의 본질이라 할 수 없는 임시국회 일정과 설날연휴에 지나치게 집착,조기 수사종결을 종용한 검찰 지휘부의 판단착오가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한 셈이다.
『국민이 납득할만한 수사결과가 기대될 때 한국자보 관계자들을 소환하겠다』고 말해오다 한국자보측의 비밀장부를 확보하기도전인 4일 오후 느닷없이 피고발인 소환을 발표한 것도 바로 상부의 독촉 때문이란 분석이다.
당시 수사팀은 『상부로부터 임시국회 개회일 이전에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독촉이 계속되고 있다』며 『지휘부가 의원들의 수뢰액 등 구체적 자료를 일선에 내려보내겠다는 뜻 아니냐』고까지 불평할 정도였다.
검찰이 뇌물 공여측의 비밀장부를 압수했을 경우 보험감독원·국세청 등 전문기관을 동원,이를 분석한뒤 결과를 근거로 비자금 조성 및 사용처를 추궁,수뢰혐의로 연결하는 것이 수사상식.
그러나 서울지검은 일단 사람부터 불러놓은뒤 확보한 비밀장부를 분석하는 이해하기 힘든 수사를 했고 결국 짜맞춘듯한 이들의 진술을 깨뜨리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검찰은 의원별로 담당검사를 지정하고도 『의원들에 대해서는 내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국회에 대한 예우차원을 넘어선 소극적 태도로 수사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받게 됐다.
앞으로 검찰은 적어도 14일까지 형식적이나마 의원 수뢰혐의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검찰이 예정보다 앞당겨 6일 김말룡의원을 소환,박장광상무로부터 사건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정황을 조사한 것도 보강수사 범위를 정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검찰의 보강수사는 이번주초로 예상되는 돈봉투사건 위증혐의 국회 고발사건과 맞물릴 수 밖에 없어 수사종결 또는 수사확대를 선택하는 과정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검찰은 이와함께 한국자보측의 비자금 63억원에 대한 조성과정에서의 탈세 또는 사용과정에서의 횡령 등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보측은 보험과 은행예금간의 이율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조성,이 자금 일부가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검찰은 자금추적을 계속중이다.
그러나 수십억원대의 자금추적에 걸리는 인력과 시간을 감안하면 일단 한국자보측의 로비활동 전모는 밝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정치관계법 등의 처리를 위한 여야 협상이 남아있어 사실상 수뢰혐의 수사는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보다 설득력을 갖고 대두되고 있다.
새정부 출범이후 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다짐해온 검찰이었지만 노동위 돈봉투사건의 수사로 정치적 사건수사의 한계만 또다시 드러낸 셈이 됐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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