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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예술과 공교육 묶은 경기도의 '탄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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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절대로 열릴 것 같지 않던 대형 금고가 입을 쩍 벌렸다. 생전 처음 보는 수표 한장이 놓여 있었다. 10,000,000원이었다. 쓸 수 없는 돈, 냉큼 슬기란 녀석이 수표를 담배에 말았다. 몇 모금 빨더니 내게 담배를 넘겼다. 깊숙이 빨아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쓴 담배였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토대로 만든 책 '나쁜 영화1'(풀빛, 1997)에 나오는 쇼킹한 장면이다. 탈(脫)학교 이후 금고털이로까지 변신한 10대들은 사회 권위를 자기파괴에 가까운 방식으로 부정한다. 학교야 말할 것도 없다. 충격적인 그 몸짓이 '너무 영화적'이라며 애써 무시할 무렵 꼼짝못할 보고서가 출현했다. '네 멋대로 해라'(김현진 지음, 한겨레, 1999)가 그것이다.

어른들이 "어, 어"하는 사이 공교육 붕괴 현장 리포트를 10대들은 자기네 손으로 공개한 것이다. 교육 종사자들도 그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더니, 그 이후 많은 것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제7차 교육과정은 그런 변화의 하나다. 문제는 무엇을 담을까인데, '경기예술교육 멘토 프로그램'(본지 1월 16일자 21면)은 그 내용물에 해당한다.

이 프로그램은 중앙부처보다 몸놀림이 용이한 지자체의 각개약진 사례다. 확실한 것은 교육현장을 움직여온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혹은 평등주의 방식은 이젠 약효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TV 등 미디어의 세례를 통해 훌쩍 웃자란 아이들에게 백묵 하나 달랑 쥔 교사는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형편에서 멘토 프로그램은 도내 다양한 전문 인적자원을 공교육 현장과 묶는 방안이다. 그건 일례일 뿐이다. 지자체별로 얼마든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을 듯싶다.

그러면 왜 경기도가 먼저 치고 나왔을까? 우연은 없다. 경기도 도립예술단들은 '탄력성'을 자랑한다. 올해 총예산은 1백51억원. 이중 예술단원 인건비가 절반이고 공연사업비가 절반에 육박하는 46.8%인 70억원으로 잡혀있다. 보통 총예산의 10%내외만이 공연사업비로 잡히거나 0.94%(광주)에 불과하기도 한 타 지자체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경기도 잘한다'는 말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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