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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교육이 가장 중요” 경희대에 전 재산·시신 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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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역 앞 광장에서 우동 장사를 하던 80대 할머니가 전 재산과 육신을 대학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10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복순(사진)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남긴 유서에는 ‘전 재산을 경희대에 기부하고, 시신은 대학 의료원에 기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서에는 세 딸의 상속포기 각서가 포함돼 있다.

경희대는 15일 “김 할머니가 전 재산인 시가 2억7000만원 상당의 빌라(서울 장위동 소재)를 기부했으며 시신은 연구용으로 기증했다”고 밝혔다.

대학과의 기부 약속은 9년 전인 1998년 이뤄졌다. 김 할머니는 2002년 당시 가지고 있던 현금의 대부분인 8800만원을 먼저 대학에 기부하기도 했다.

둘째 딸 심명희(38)씨는 “어머니가 젊은 시절, 하루 3시간만 자며 악착같이 벌었지만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걸 보지 못했다”며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예전부터 “불쌍한 사람도 도와줘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기부 절차를 대리해준 지인은 “10년 전, 신문을 통해 경희대가 주최한 ‘UN 평화의날 기념 행사’에 대한 기사를 접한 고인이 이 학교에 당신의 재산을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굳혔다“고 말했다.

9년 전에 유서를 작성해 놓은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98년 김 할머니에게 당뇨병에 따른 합병증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을 찾아 “정신이 있을 때 기부 서류(유서)를 작성해놔야 겠다”며 “증인이 돼 달라”고 했다. 경희대는 ‘김복순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원하겠다”고 계획을 공개했다.
 
김 할머니는 30대 후반인 60년께 남편과 사별했다.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서울역 앞에 네 평짜리 포장마차 우동집을 차린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때부터 김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고아를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다. 호적에는 두 명의 딸이 올라와 있지만 실제로는 아들 하나, 딸 셋을 입양했다. 마지막으로 입양한 김미진(26)씨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입양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친척 이름으로 데려왔다. 40여년 전 아들도 입양했는데, 성인이 된 후 연락이 끊기며 호적에서 정리됐다고 한다.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빌라 기증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둘째딸 심씨와 택시 운전을 하는 사위 하민호(39)씨는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훗날 우리도 경희대에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대학 측에 전했다.

심씨는 ‘호랑이처럼 엄하고 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로 김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는 “명절 때 먹을 것이 선물로 들어오면 우리는 맛만 보게 하고 모두 어려운 이웃에 줬다”며 “‘우리가 투정하면 ‘너희는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한끼가 아쉬운 사람이 있다는 걸 마음에 새기라’고 꾸짖곤 하셨다”고 기억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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