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활로 찾는 불 공산당/마르셰 서기장 퇴진으로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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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련붕괴 영향 군소정당으로 전락/「구 시대적 공산주의」와 결별 눈앞에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누려왔던 프랑스공산당(PCF)이 22년동안 당을 끌어온 조르주 마르셰 서기장(73)의 퇴진과 함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70년대 카리스마적 인기를 누리며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를 끌어낸 마르셰 서기장은 25일 제28차 PCF 전당대회에서 22년간의 당지도자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고별연설을 통해 『지난 시간은 실수와 퇴보의 고통스런 시기였다』고 인정하고 『PCF는 공산주의 이상을 간직한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도부의 결정을 당원들이 반대없이 수용하는 이른바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철폐할 것을 건의했다.
마르셰의 퇴진에 따라 「전국서기」라는 새로운 명칭을 갖게 될 새 지도자는 29일 선출된다.
특히 마르셰 서기장은 프랑스 공산주의의 부침을 웅변적으로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퇴진은 곧 프랑스 순수 공산주의 운동의 종말을 의미한다.
1920년 프랑스 공산당이 출범하던 해에 태어난 마르셰는 철강노동자 출신으로 27세에 PCF에 투신,59년부터 정치국원·부서기장 등을 거쳐 72년부터 서기장직을 역임해온 프랑스 공산주의의 산증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PCF는 2차대전중 레지스탕스운동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44년 드골 임시정부에서는 7명의 각료를 입각시키는 등 70년대말까지 프랑수아 미테랑 현 대통령이 주도하는 사회당(PS)을 압도하며 좌익운동을 끌어왔다.
마르셰는 서기장 취임후 추락하던 공산당에 대한 인기를 20%선까지 만회시키며 PCF를 국민정당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7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마르크스 노선을 일부 수정하며 「노동자의 당」이라는 존립목적까지 부정하는 모험을 무릅쓰고 당 재건에 힘써 80년대말까지 당내에서 90% 이상의 지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와 91년 구 소련 와해는 PCF에 소생할 수 없는 치명타를 가했다.
지난해 3월 총선에서 불과 9%의 지지로 장 마리르펜의 국민전선(FN) 보다 뒤처지는 군소정당으로 몰락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오히려 극우정당에 표를 던지며 PCF에 등을 돌렸던 것이다.
PCF는 이제 마르셰의 구 시대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와 내년의 대통령선거에 준비해야 한다. PCF도 이탈리아 공산당처럼 사회적 민주주의로 우선회할 때가 온 것 같다.<파리=고대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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