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정예화의 두 전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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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군은 기본적으로 전쟁에 대비하는 조직이다. 전쟁을 예방하고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되면 이겨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은 그래서 건강하고 강한 군대와 마음으로부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군을 대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전쟁을 해보기 전에는 어느 정도 건강하고 실력이 있는지를 검증해보기 어려운 것이 군조직의 특성이기도 하다. 평소의 행태를 통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를 계속 묻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국방비로 해마다 10조원 이상의 세금을 부과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군이 돈값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국민 대다수가 이 점에 반드시 긍정적인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점에서 국방부가 20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보고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력의 규모는 줄이되 군운용을 질위주·전력확보로 전환하겠다는 정책방향은 옳다고 본다. 현대전은 사람의 머릿수로 싸우는 육체전이 아니라 걸프전에서도 여실히 보여주었듯 지식·정보·첨단장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첫째는 군조직 구성원인 군인의 사기가 극대화되어야 하고,둘째는 군조직 자체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체제로 개혁되어야 한다. 정예화의 내용이 감군과 고가장비 비치만은 아니다. 자칫 병력수나 줄이고 쓰잘데없이 비싼 무기만 쌓아놓는 것이 곧 정예화라는 안이한 접근은 오히려 전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최근들어 군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소식을 우리는 우려한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산다는 조직이다. 최근들어 전역희망 군간부가 부쩍 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군 사기의 적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군간부의 35%가 스스로를 우리 사회의 하위계층이라고 생각한다는 보도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군의 사기진작을 위한 국방당국의 획기적 대책을 촉구한다. 군의 사기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어떻게 보면 지난 세월 군 스스로가 저질러놓은 업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으로 저질러진 과거를 군조직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고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아울러 직업군인의 생활이 안정되는 복지대책도 군 사기와 직결되고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체계를 갖출 때 한정된 예산으로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새삼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율곡사업·군수부조리의 아픈 경험을 통해 경영개념을 도입한 혁신적 군운용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군정예회가 말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따뜻한 관심으로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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