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섬에가고싶다를 보고-소설가 이호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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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그 섬에 가고 싶다』.
이게 얼마만인가.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생긴 우리 영화 한편을 보았다.
주로 映像으로 이어지는 전체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럽게 미끄럽지가 못하고,우리 영화 특유의 어거지스럽고 稚氣스러운 장면들까지도 차라리 일말의 따뜻한 미소를 자아낸다.
가령 넙도댁이 혼자 배의 노를 저으며 구성지게 노래를 하는 장면같은 것,어색한 그만큼,차라리 따뜻하다.
우리 민족의 原型이 여기에 있고,우리 영화의 原點이 바로 여기에 있다.우리 영화는 바로 이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사실 60년대 金勝鎬 주연의『馬夫』이후,우리나라 영화들은 통틀어 엉뚱한 동네에 휩쓸려들었다가 이 영화와 함께 비로소「蕩兒」 돌아오듯이 돌아왔다는 느낌마저 든다.
해방공간과 6.25를 겪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에 깊은 향수를자아내게 한다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유년기의 풍경을 영화 속에서 마주한 내 또래의 관객들은 여러가지로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이 심리적 불편함은 우리네 삶의 원형이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지극히 미래지향적이다.
슬픈 과거역사를 보는 이 영화의 시선이 그리 명쾌하지는 못하지만 버거운 주제와 고투해보려는 감독의 의지는 최근의 한국영화로는 보기드문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20년동안 숨돌릴 틈도 없이 물량으로 공격해온 저속한 미국영화들,그리고 국적불명의 홍콩영화들을 생각해 보라.
통계에 의하면 1974년부터 1986년까지 홍콩영화 수입편수는 10편 안짝이었는데 87년에 17편,88년에 46편,89년에는 88편,90년에는 79편,91년에는 65편으로 급증했다고한다.이렇게 되면서 우리 영화계는 그야말로 황량 해졌다.
우리 영화들도 거개가 국적불명의 오락물 일변도로 전락해 버렸다. 아시다시피 홍콩은 고작 면적 1천평방㎞ 남짓의 영역에 현재 密入境한 비합법시민까지 합쳐 겨우 6백만인구로서 제대로 나라의 구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몇년 뒤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돼야 하는 租借地다.재래형의 식민지는 아니지만 온전한 한 나라의 체통은 지니지 못하고 있고,어중띤 섬에 불과하다.
그러나 싱가포르.대만등과 함께 소위 아시아의 네마리 龍 가운데 하나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있는 그 홍콩사회가 지니고 있는活力에는 괄목하지 않을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홍콩영화인 것이다.그들은 처음부터 예술성.
사회성같은 것은 일절 무시한채 철저히「눈요기 오락성」만을 추구하여 오늘과 같은 국제화시대에 전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는것이다. 과연 이런 홍콩식 국적불명성과 오락성만이 지구촌 단위의 21세기 문화를 주도하게 될까.
아무리 국경이라는 벽이 낮아지고 희석되더라도 인류문화가 통틀어 그렇게 떨어질 것같지는 않다.
그 증거의 하나로 요즘 홍콩에서는『고민할 때가 되면 어차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테니까 지금만은 골치아픈 생각같은건 그만두자』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비단 영화문제에만 한하지 않은 국제화.개방화.세계화에 따르는 여러 문제들과 이미 만나게 되는데 이 점으로비추어서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 섬에 가고 싶다.그러나 이미 50년전의 그런섬은 이 나라에도 없다.
그러나 50년전,1백년 전의 그 삶을 한번쯤 반추해보는 것은21세기를 앞둔 오늘의 우리 위상을 챙기는데 일정한 부피를 더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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