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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프랑스를 대표할만한 두 지성이 만나 남자와 여자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프랑스 문화장관과 여성장관을 지낸 77세의 프랑수아즈 지루 여사와 45세의 신철학기수였고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철학자 앙리 레비. 한 사람은 여성운동가이면서 동거생활을 반대하는 입장이고,한사람은 여성운동과는 거리가 먼 여배우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철학자다. 이들 두 사람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출판사의 주문으로 무화과 그늘에 앉아 남과 여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을 벌이기 시작해 마침내 한권의 책을 내게 된다. 이 책이 지난해 프랑스의 베스트셀러가 된 『남자와 여자』다.
이 책의 어떤 토픽에서도 두 지성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정절,사랑과 질투,결혼의 동기,성공적인 부부 등등의 주제를 내세워 이야기를 나누지만 남과 여의 입장과 주장은 언제나 평행선이다. 다만 유일하게 일치하는 결론이 있다면 남과 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과 여,세대간의 격차,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과 전통이 각기 다르니 부부학의 정설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나라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이라지만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편 성기절단」 소송사건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쪽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아내가 잠자는 남편의 성기를 자르자 남편은 이를 봉합수술하고 법정에 나와 아내와 맞섰다. 남편은 술에 취해 잠들었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성폭행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TV가 연일 법정장면을 중계하고 신문이 대서특필하며 마치 올림픽이라도 중계하듯 떠들썩하다. 여기에 칼과 성기모양의 초컬릿이 불티나게 팔리고,이들 부부는 모두 이 사건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까지 벌고 있다. 세계 가정의 해 벽두에 맞은 해괴한 사건이다.
이는 단순히 부부간의 문제를,남과 여의 문제를 성실히 풀어보자는 차원이 아니라 부부간의 성관계마저 모양좋게 포장해 서로가 상품화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런 야릇한 현상마저 세계화·국제화 붐을 타고 수입되어 이상한 남녀대립을 불러일으킬까 걱정이다. 부부간의 문제를 법적으로 푼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두사람만이 아는 관계를 두고 폭행이냐 정당방위냐로 떠들썩한 사회분위기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 이런 문제를 법적으로 풀기보다 사랑과 화해와 관용으로 풀어야 한다고 믿는 우리네 도덕기준이 아직은 보다 인간적이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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