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광장>어느 의사의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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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의사들은 진단을 하고 결과를 본다고 수많은 검사를 한다.그러나 그들중 누구도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일에는 무관심하다』『아내는 병원의 접수하는 아가씨들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다.답변이 너무 신경질적이어서 될수 있는 한 문의하지 않고 눈치로 일을 해결하려 했다』『병원에서는 걸핏하면「환자 위주」라는 구호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단지 구호에 그칠 뿐이었다.』 병원에 대한 이런 불만을 외과 전문의면서 한 병원의 원장이었던 분이 쓴글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故 金胄煥박사는 자신의 유고집『임상투병수기』에서 자신이 암으로 진단된 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3년여간 몇몇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겪었던 경험을 기록해 놓고 있다.이 책에는 외과 의사이자 병원 관리자며 무엇보다 갑상선 암을 지닌 한 환자로서 느꼈던 현대 의학의 한계점과담당 의료진에 대해 가졌던 감정들,병원에서 겪었던 불편 사항,결과적으로는 완치에 실 패하고 좀 더 빨리 치료를 시작했거나 더 적절한 치료를 받았었다면 하는 아쉬움 등이 담겨 있다.
자신의 죽음을 충분히 내다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겪었던 생애 마지막 경험들이 앞으로도 비슷한 과정을 겪을지 모를 환자들에게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믿음에서 이를 기록해 놓았을것이다. 이 유고를 보면서 새삼 필자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金박사 스스로 겪은데서도 나타난 우리 의료 체계와 병원의 문제점이다. 그가 치료받은 병원과 담당의사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겪으면서 몇차례 바뀌었고,의사에 따라 치료 방침 또한 바뀌었으며,본인의 증상 호소에도 의료진은 무관심하게 넘어가기도 했고,병원 시설은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곤 했다.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던 평소 성격대로 고인은 주위에 별다른부탁 없이 병원을 다녀 후배나 동료들에게 오히려 아쉬움을 주었지만 별다른 연줄이 없는 일반인들이 겪는 불편과 혼란은 지금도계속될 것이다.
큰 병에 걸렸을 때는 어디의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가,병원은 왜 이리 붐비고 각종 절차가 복잡한가.우리 의료에 대해 남다른문제의식과 애정을 지닌 연구자이기도 했던 고인을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개선을 나름의 업으로 삼고 있 는 필자는 착잡한 심정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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